아서 앤더슨의 파멸
아서 앤더슨의 파멸
  • 정문재 부국장 겸 경제부장
  • 승인 2013.11.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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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론의 분식회계는 21세기 최악의 기업 사기 사건으로 꼽힌다. 엔론은 대규모 회계 부정이 적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세계적인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6년 연속 엔론을 미국 최고의 혁신적 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엔론은 에너지 기업이 본받아야 할 우수 사례로 평가됐다.

임직원에 대한 대우도 미국 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수시로 직원들에게 돈 보따리를 풀다 보니 '일하기 좋은 미국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엔론은 숱한 특수목적법인을 세워 부채를 떠넘겼다. 엔론은 그 덕분에 부채가 별로 없는 우량 기업으로 치장했다. 재무구조가 뛰어난 것으로 포장하자 주가는 치솟았고,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힘입어 자금조달 비용은 떨어졌다.

하지만 자회사 상황까지 반영한 연결재무제표로는 엄청난 부실 덩어리였다. 조직적·계획적 분식 회계에 힘입어 이를 감췄을 뿐이다.

조직적 범죄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누군가 도움을 줘야 한다. 엔론의 경우 회계감사를 맡은 아서 앤더슨을 공범으로 끌어들였다. 앤더슨은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 회계시장에서 PWC, 딜로이트, 언스트 앤 영, KPMG와 함께 '빅(Big) 5'를 형성하고 있었다. 앤더슨이 외부 감사를 맡았기에 투자자들은 엔론의 재무제표를 신뢰했다.

창업자 아서 앤더슨은 1913년 동업자들과 회계법인을 설립한 후 1918년 회사 이름을 '아서 앤더슨'으로 바꿨다. 앤더슨은 회계시장의 선구자였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조치가 회계법인의 관행이나 제도로 자리잡았다.

앤더슨은 "회계사는 기업의 경영자가 아니라 그 기업의 주주 및 투자자를 대상으로 책임을 지는 존재"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사소한 회계 실수라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기업이 "앤더슨이 지나치게 깐깐하다"며 계약을 연장하지 않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늘 '바른 생각'과 '바른 말'을 주문했다.

창업자 앤더슨이 1947년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런 원칙은 지켜졌다. 1970년대부터 스톡옵션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어나자 앤더슨은 "이를 비용으로 분류해 회계 처리해야 한다"고 미국 재무회계기준위원회(FASB)에 건의했다. 스톡옵션이 현금보상과 마찬가지로 기업 수익을 줄이기 때문에 비용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해 상충은 원칙을 갉아먹는 암세포다. 아서 앤더슨은 컨설팅 분야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이해 상충에 부딪쳤다. 컨설팅 일거리를 많이 따내려면 기업에 호의적이라야 한다. 깐깐한 회계감사는 기업 고객의 반발을 산다.

녹녹한 회계 감사는 이내 부실 감사로 이어졌다. 엔론 뿐 아니라 월드컴, 아시아 펄프 앤 페이퍼 등 상당수 기업의 회계 부정을 방조했다.

앤더슨은 고객 기업과 함께 파멸을 맞았다. 앤더슨은 악수(惡手)를 거듭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감사 자료를 서둘러 파기했다. 검찰은 2002년 6월 증거 자료 파기를 통한 재판 방해 혐의로 앤더슨을 기소했다.

회계법인으로서 앤더슨의 수명은 끝이 나고 말았다. 미국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범죄에 연루된 회계법인이 제출하는 감사 자료를 접수할 수 없다. 앤더슨은 어쩔 수 없이 회계법인 면허를 반납했다. 미국 사업은 KPMG 등 경쟁 회사에, 해외 사업은 현지 회계법인에 매각했다.

부실 저축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를 매입한 투자자들에게 저축은행은 물론 회계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도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기업이 작성한 회계의 적정성을 감독해야 할 회계법인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보통 회계법인은 3년 단위로 기업과 외부감사 계약을 맺는다. 보통 첫해에는 아주 깐깐하게 감사를 진행하고, 2년 또는 3년째는 보다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한다. 첫해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기업은 그 뒤부터는 회계법인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2년째부터는 계약 연장을 의식해 비교적 해당 기업에 우호적인 감사를 진행한다.

외부감사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기업을 하나라도 더 고객으로 유치해야 수수료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부실 감사에 대한 책임도 엄중해야 한다. 부실 회계 감사에 따른 경제적 책임이 수수료 수입보다 커야 부실 감사의 유인이 사라진다.

회계 감사 보고서는 일종의 건강증명서다. 허위 증명서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무너뜨린다. 부실 회계 감사에 대해 제재 수위는 높아야 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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