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왜 '살인암시' 무시했을까
경찰은 왜 '살인암시' 무시했을까
  • 김성수 기자
  • 승인 2014.08.05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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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경찰이 112종합상황실에 걸려온 한 조선족의 이른바 '살인암시' 전화를 취객의 장난전화로 여기고 무시하다 큰 멍에를 안게 됐다.

살인을 암시하는 40대 남성의 전화를 네차례나 받고도 "신고할 내용 있느냐. 신고내용 없으면 다음 전화하겠다. 긴급전화다. 처벌받는다 그만해라" 등으로 신중치 못한 판단을 내려 여대생을 '묻지마 살인미수'의 피해자로 몰고간 꼴이 돼 버렸다.

이 남성이 "내가 사람 죽이고 내가 신고하는 것"이라고 밝히기까지 했지만 경찰은 여전히 주취자의 장난전화로 여기고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가 50분 뒤 걸려온 목격자의 신고를 받고서야 출동지령을 내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50분간 넋놓고 있는 사이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던 한 여대생이 이 남성의 흉기에 허벅지를 찔려 수술까지 받는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자칫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찰의 초동판단과 발빠른 대처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112상황실 녹취록에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살인미수범으로 검거된 이 남성의 첫번째 전화는 경찰이 해명했던 대로 장난전화로 판단할 소지가 있다. 전화를 받은 경찰이 "112경찰입니다"라는 말에 이 남성은 "어디십니까"라고 반문하고 경찰이 다시 "경찰이에요"라고 답변하니 이 남성은 "경찰이에요. 여보쇼"라며 12초만에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번째 전화부터다. 이 남성이 "여보쇼. 사람죽…"하자 경찰은 "선생님 다시한번"이라며 대답을 기다린다. 이후 경찰과 주고받은 대화에서만 이 남성은 "사람죽여도, 일 있냐고"라는 말을 4차례나 반복한다.

두번째 통화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에서 경찰도 무언가 의심쩍은 반응을 보였다. 경찰은 "사람죽여도… 사람죽이면, 사람죽여요. 그게 무슨뜻이죠? 사람죽이면" 등 되묻는 노력(?)을 한 흔적은 보이지만 결국 전화가 끊어져 더 이상 대화가 어렵게 됐다. 여기까지는 남성이 먼저 전화를 끊었기 때문에 경찰의 판단착오를 굳이 탓하기는 어렵다.

이어 걸려온 세번째 전화와 네번째 전화에서는 경찰이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고 전화를 먼저 끊어버린 게 문제였다.

26초 동안 주고받은 대화에서 "신고를 하면 내가 살 수 있겠냐고? 내가 이해를 하잖아"라는 말에 경찰은 "예. 신고내용 없으면 다음 전화하겠습니다. 긴급전화입니다"라며 수화기를 먼저 내려놓는다.

이어진 27초간의 네번째 통화에서도 "내가 사람 죽이고 내가 신고하는 거에요"라는 남성의 말에 "한번만 더 하면 처벌받아요. 그만해요"라며 경찰은 매몰차게(?) 대화를 종료한다.

술을 마신 남성이 횡설수설 하자 대응을 안하던 경찰은 50분 뒤 걸려온 목격자의 신고에 화들짝 놀라 1분만에 현장출동을 명령한다.

경찰은 여대생이 봉변을 모면할 수 있었던 '범죄 예방 골든타임'을 결과적으로 스스로 놓쳐버린 셈이다.

전화를 네차례나 받고도 출동명령을 내리지 않은 사실이 기자들에게 알려진 뒤 경찰이 보여준 태도도 문제다.

목격자의 신고전화 사실을 쏙 빼놓고 "네번째 신고를 받고 출동명령을 내렸다"고 밝힌 뒤 기자들의 취재가 시작되자 1시간 뒤에서야 "출동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목격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하게 됐다"고 진실을 털어놓았다.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다.

경찰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일하겠습니다"라는 표어와는 달리 '경찰의 눈높이'에서 일을 한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전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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