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일병 사건'과 영화 두 편
'윤 일병 사건'과 영화 두 편
  • 손정빈 기자
  • 승인 2014.08.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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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이 때아닌 주목을 받았다.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이 비극의 양상은 '괴물'의 그것과 매우 닮았다. 모두가 비참해 했던 것은 영화가 영화가 아니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때로 너무 현실적이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은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다.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에서 근무하던 윤모 일병이 선임병들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다가 결국 맞아 죽었다. 가해자들이 윤 일병에게 가한 폭력은 필설 밖의 잔혹이다.

사건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분노하고 있지만, 화를 더 키우는 것은 군 당국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다. 군은 범죄를 의도적으로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정황은 충분하다. 군은 윤 일병의 사망원인을 알고도 가해자를 단순폭행 혐의로 군 검찰에 송치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4월8일 백낙종 국방부 조사본부장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군 당국의 은폐 정황은 이것 외에도 수두룩하다.

사건을 지켜보면서 세월호 사고 때처럼 어떤 영화를 떠올렸다. 하나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장편 '용서받지 못한 자'(감독 윤종빈), 다른 하나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단편 애니메이션 '창'(감독 연상호)이다.

두 영화는 모두 군대를 다룬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용서받지 못한 자'는 군대라는 사회가 어떻게 폭력을 만들어내는지에 집중한다. '창'은 군대가 내부 문제를 얼마나 쉽게 처리하는지를 고발한다. 군대 내 폭력의 탄생과 수습은 윤 일병 사건의 핵심이다.

먼저 '용서받지 못한 자'.

'승영'은 군내 부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고참이 되면 민주적인 내무 생활을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선임병이면서 친구인 '태정'은 그를 감싸주지만, 태정이 전역하자 승영의 군생활은 선임병의 따돌림 속에서 꼬이기 시작한다. 승영은 혐오했던 폭력을 이미 휘두르고 있다. 고문관으로 불리던 후임병 '지훈'이 자살한다. 승영도 결국 자살한다.

윤종빈 감독이 사병들의 내무반 생활을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이유는 군대의 폭력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정확하게 다루기 위함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윤 감독이 사병 외에는 군대의 다른 어떤 부분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인데,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형적인 시스템에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 상황에서 승영과 지훈은 폭력에 희생당한다. 지훈이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행 사실을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영화에 없다. 승영은 휴가를 나와 태정을 찾아가지만, 그는 친구를 외면한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군대 폭력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다. 군대 폭행 문제가 하루이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윤 일병 사건이 터지자 쏟아지는 폭행 관련 제보는 그 근거다. 은폐하고 축소하는 것 외에 군 당국은 뭘 했을까. 형식적인 정신교육을 반복하고, 말뿐인 선진 병영문화를 다짐하면서 정작 사병에게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군의 문제는 영화 '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범 분대로 꼽히는 '철민'의 생활관에 관심사병 '홍영수 이병'이 전입 온다. 철민은 열심히 하지 않는 홍 이병을 열심히 교육하지만, 홍 이병의 행동 하나로 중대 전체가 곤란한 상황에 빠진다. 철민은 홍 이병을 폭행하고, 그는 그날 밤 자살을 기도한다.

간부들은 책임을 회피한다. 희생당하는 건 철민이다. 평소 철민을 신뢰하던 중대장과 대대장은 사건을 축소·은폐하기 위해 철민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워 영창으로 보낸다. 그리고 생활관 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가 상급부대에 보고한 내용은, 생활관 폭행 발생은 모든 생활관에 만들어 놓은 작은 창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을 만들겠다.

군은 이제 대책을 내놔야 한다. 다시는 윤 일병과 같은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육군은 병영 문화 혁신안을 만들겠다며 민간이 포함된 혁신위를 출범했다. 가장 먼저 검토 중이라고 보도된 방안은 스마트폰 허용이다.

물론 피해 병사가 언제라도 사용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더 수월해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방안이 어떻게 나왔을까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창 없는 문에 창을 낸 영화 '창'의 간부들 행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사망한 윤 일병의 사건을 보고, 쉽게 외부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기에 다시 한 번 고육지책을 내놓은 셈이다. 전 장병을 상대로 이뤄질 계획이라는 정신교육 또한 같은 맥락이다. 생활관 문에 창을 내는 것이 아닌, 군대라는 조직 자체에 창을 만드는 혁신안이 필요하다.

태정은 승영이 죽은 이유를 알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창에 다녀온 철민은 전역하지만 홍영수는 여전히 군대에 남겨져 울고 있다. 우리는 이유를 알아야 하고, 그들을 눈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군 당국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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