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농악단은 여성국극에서 '여성'이란 힌트를 얻어 출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1957년 남원 국악원에서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수강생이던 15~20세 가량의 여성들로 농악단을 꾸렸는데 사람들이 이를 '여성농악단'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960~70년대 '춘향여성농악단' '전북여성농악단' '호남여성농악단' 등 비슷한 단체들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호황을 맞았다. 그러나 현재는 유명무실하다.
연희단 팔산대가 18~21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 하늘극장에서 여성농악단의 전통을 살린 '무풍(舞風)'을 펼친다.
까마득히 잊어진 여성농악단의 풍물을 복원하는 무대다. 무용수들은 3년간 합숙하면서 2만6280시간의 수공을 들였다. 옛 흥행을 잇고자 전통춤에선 유례없는 5회 장기 공연을 펼친다.
여성농악단 흥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단체가 호남여성농악단이다. '호남 오도바이'란 별명의 건달 김칠선이 운영하던 이 단체는 전국을 다니며 공연했다.
풍물은 경기 충청의 웃다리 농악, 경상도의 영남농악, 강원도의 영동 농악, 전라도의 호남 농악으로 나뉜다. 그중 호남은 농악이 발달해 호남 농악 내에서도 호남우도와 호남좌도로 나뉜다. 무엇보다 느리고 섬세한 가락들이 많고 춤이 발달해 옛 여성농악단은 주로 호남우도농악을 레퍼토리로 채택했다.
농악에서 특히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것은 판굿이다. 농악대가 마을의 집을 돌면서 고사덕담으로 액풀이를 하고 우물이나 당산 등에 풍물을 울려주는 종합 예능이다.
연희단 팔산대가 노리는 것이 판굿이다. '무풍'은 이런 판굿을 무대화 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단원들은 판소리, 기악, 무용 등을 전공하고 풍물에 입문했다.
기획과 연출은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 씨가 맡았다. 서울놀이마당 상임연출, 서울두레극장 극장장 등을 거친 그는 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풍물이 길거리 공연이 아니라 극한의 무대로 선보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레퍼토리는 진도의 북춤과 풍물의 북을 연희단 팔산대가 엮은 팔산북춤, 농악패 중 목이 좋은 상쇠가 나와서 쇠를 치며 하는 비나리를 비롯해 도살풀이와 사물놀이, 오채질굿, 오방진, 설장구춤, 징춤 등으로 꾸민다.
김칠선의 아들로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는 춤꾼 김운태도 나온다. 그는 전립(戰笠)에 흰 띠를 달아 돌리면서 추는 '채상소고춤'을 춘다. 1만5000~3만원. 연희단 팔산대. 1644-860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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