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을 만든 '란가쿠(蘭學)'
노벨상을 만든 '란가쿠(蘭學)'
  • 정문재 부국장 겸 경제부장
  • 승인 2014.10.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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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을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럴만했다. 그의 삶은 시련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스스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영지를 지키기 위해 아들에게 자살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런 고초를 이겨낸 끝에 권력을 손에 넣었다. 칼로 권력을 잡았기에 무사들을 경계했다. 언제라도 권력 기반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1603년 '도쿠가와 막부(무사 정권)'를 열면서 지방 영주들을 견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지방 영주는 정권을 탈취할 수 있는 '잠재적 적(敵)'이었다.

도쿠가와는 정권 수립 후 경제력을 키우기 위해 무역을 장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쇄국(鎖國)정책으로 돌아섰다. 정권의 안정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개방과 함께 기독교 신자가 크게 늘어나자 그는 위기감을 느꼈다. 기독교 신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면 통치자의 명령이라도 따르지 않았다. 기독교 금지령을 내렸다.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후미에(踏繪)'를 활용했다.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밟고 지나가는 것을 거부하면 신자로 간주했다. 기독교 신자들의 뿌리를 뽑으려고 애썼다.

쇄국정책은 또 다른 목적도 갖고 있었다. 지방 영주들의 경제력 강화를 억제하는 효과도 있었다. 일본 서남부 지역은 무역 의존도가 높았다. 무역이 활발해지면 이 지역 영주들의 경제력도 확대된다. 경제력 확대는 군사력 강화로 이어진다. 미리 싹을 잘라야 했다.

전면적인 쇄국정책은 아니었다. 제한적으로 무역을 허용했다. 막부의 엄격한 관리 아래 무역이 이뤄졌다. 서양 상인들의 활동 범위를 나가사키 데지마(出島)로 제한했다. 대상은 주로 네덜란드 상인들이었다. 네덜란드는 기독교 포교보다는 무역에 관심을 뒀다.

일본은 네덜란드 상인을 통해 선진 문물을 수입했다. 16세기 중반부터 네덜란드와의 무역이 늘어나자 본격적인 '네덜란드 배우기'가 시작됐다. 란가쿠(蘭學)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란가쿠는 '화란(네덜란드) 배우기', 다시 말해 선진 과학기술 습득 노력을 가리킨다. 일본의 근대화는 란가쿠에서 출발했다.

의학, 화학, 물리학, 전기 등 과학기술서적을 일본어로 번역한 후 출판했다. 에도 막부는 서양 서적 수입을 금지했지만 과학기술 관련 서적은 예외였다.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 과학기술 서적을 통해 선진 문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에도(옛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선진 과학기술 서적이 널리 보급됐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이 란가쿠 보급에 힘썼다. 후쿠자와는 네덜란드어(語) 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이들이 과학기술 인력으로 거듭났다.

일본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 부상했다. 란가쿠를 바탕으로 과학기술 역량을 키웠다. 일본은 1853년 네덜란드의 설계도와 러시아 증기선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증기선을 독자적으로 건조했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도쿄대 등 7개 제국대학을 설립한 후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19명 가운데 15명이 이들 대학 출신이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국제적 과학기술 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해외 공동 학술 포럼 등을 통해 일본의 연구 성과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일본이 2000년 이후 노벨 과학상 분야에서 미국, 영국과 함께 세계 3강(强)을 구축한 것도 이런 노력의 결과다.

경쟁 무대에서 3등은 곧바로 1등으로 도약할 수 없다. 노벨 과학상은 1등의 몫이다. 한탄과 선망만으로는 3등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2등은 다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한 후 1등으로 올라서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등의 자세다.

노벨 과학상의 비결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지속적인 기초 과학기술 개발과 국제적 협력이다. 해외 우수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적극적인 과학기술 외교를 펼치는 게 최근의 추세다.

중국은 한국 대사관에 4명의 과학기술 외교관을 배치해 놓고 있다. 우리의 과학기술 동향을 파악하는 게 이들의 주요 임무다. 이들은 한국의 우수 연구 인력을 중국으로 영입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자칫하면 부족한 기초 과학기술역량마저 훼손될 수 있다. 1등으로 올라서려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탄만 되풀이하는 3등 신세를 면치 못한다.

참고 문헌
1) 주진영 지음. 일본사의 이해. 2014. 현학사.
2) 차두원, 이종률, 장인호 지음. 노벨과학상 수상 현황 분석과 우리의 대응 방안. 2010.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3) 차두원, 장인호, 조준환, 김성준, 정주호. 민간 기업과 재단 연구자의 노벨과학상 수상 현황과 요인분석. 2013.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4) 蘭學 -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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