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사태도 집안 싸움, 사내정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꼴이다.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는 자신이 "정치적인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선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에 대한 의혹 제기와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들의 행정업무 미숙을 들추는데 전력투구했다. 박 대표의 말에 따르면, 사무국 직원들이 호소문을 통해 그녀의 막말을 폭로한 배후엔 정 감독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런 사내정치에 맞서 미디어를 통한 외부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치에도 지켜야할 룰이 있다. 최소한의 '인권 존중'이다. 이미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것만 해도 박 대표의 막말은 수위가 꽤 높다. 그녀의 말대로 직원들이 일처리가 힘들 정도로 미숙했다고 하더라도 인권침해는 허용될 수 없다.
그럼에도 박대표는 정 감독을 끌어들여 막말파문 물타기에 주력했다. 한 단체를 책임지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사과할 건 사과하고 해명에 나서는 게 순서다. "왜 내 말은 다 믿지 못하는가"라는 답답한 심경토로는 그 이후다.
내년 재단법인 출범 10년을 맞는 서울시향의 성과는 뚜렷하다. 정 예술감독이 주축이 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반열에 올랐다. '정명훈의 서울시향'이라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성과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정명훈만의 오케스트라'라는 지적이 나왔고 박 대표는 이를 사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의회에서도 서울시향의 비효율적인 운영에 대한 지적은 늘 있어왔다. 문화예술단체이지만, 한해 예산 180억원 중 서울시가 110억원을 출연한다. 시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만큼 회계가 투명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시정할 건 시정해야 다음 10년을 내다볼 수 있다.
바둑용어인 미생(未生)은 아직 두집이 못나 바둑돌이 살아있지 못한 상태를 뜻한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누구도 완생(完生)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서울대·하버드대를 나와 대기업을 거친 경영전문가 박 대표도, 세계적 거장인 정 예술감독도 어떤 의미에선 미생이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조직파탄을 막는 장치로서 정치는 필요하다. 상호 이해를 조정하는 게 정치다. 중요한 건 이를 발판으로 조직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자기 성취도 달성해 슬기롭게 완생하는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사내정치를 하려는 천관웅 과장에게 오상식 차장은 말한다. "일하러 와서 게임이나 하고 있다가, 자네부터 게임에 빠진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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