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립다 ①
엄마가 그립다 ①
  • 박은자(동화작가)
  • 승인 2015.02.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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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영운 권사 이야기
▲ 박은자사모
어머니의 추도식 날, 예배 도중에 잠간 어머니와의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맨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일은 너희들이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일들 가운데 자식들이 모르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만 될까? 우리들은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언제 사랑이 시작되었는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 그 두 단어 앞에서 자식들은 모든 것을 다 당연하게 여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비명에 언제든 달려오시는 분이 어머니였고, 내가 무엇을 요구하든 어머니는 거절하지 않으셨다. 지나고 보니 내가 어머니께 요구했던 것은 대부분 부당한 것들이었다. ‘나 때문에 어머니가 참 힘드셨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참 후에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어머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다. 그래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어머니에게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나는 어머니 이야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추도식 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의 삶이 다가왔다. 나는 비로소 어머니의 부재에서 깨어났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느릿느릿 이어졌지만 길지 않았다.

“너희들 엄마 병을 고칠 수 없다고, 의사가 두세 달밖에 살 수 없다고 했을 때, 너희들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앞이 깜깜했다. 다리가 휘청거려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희 엄마가 종이쪽지를 하나 주면서 말하는 거야. 종이에 적힌 주소를 찾아가서 쌀 한 가마씩 배달해달라고. 종이쪽지를 받아들었지만 할 수가 없었지. 방아 찧을 힘도 없고, 또 배달할 기운도 없었지. 며칠 후에 너희들 엄마가 쌀을 배달해 주었느냐고 묻더라. 내가 무슨 정신으로 방아를 찧느냐고 말했더니 너희들 엄마가 막 화를 내는 거야. 내가 죽어가면서 부탁하는 건데 안 들어 주느냐고. 나는 얼른 방아를 찧어서 쌀을 싣고 나섰단다. 쌀을 배달할 곳이 여러 집이었는데, 가서 보니 그 집들이 모두 너희 엄마가 평소에 쌀 한말씩 이어서 가져다주던 집이었더구나. 더는 쌀을 머리에 이고 갈 수가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쌀 한 가마를 가져다주게 했던 거지. 그 날, 쌀을 배달해 주면서 내가 참 많이 울었다. 언젠가 쌀이 너무 자주 떨어져서 왜 그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럴 때 너희 엄마가 손님도 많이 오고, 또 많이 먹어서 그렇지 쌀이 어디로 날아가느냐고 말했단다. 사실은 정말로 쌀이 날아다녔던 거지. 너희 엄마 머리를 타고. 너희 엄마는 그렇게 주변 사람들 형편을 살피고 살았다. 누군가 어렵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지.”

아버지의 이야기에 우리 자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머리를 타고 가난한 집으로 날아갔던 쌀 한 말, 가난했던 그 사람은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슬펐을까? 다가올 막막함에 또 얼마나 세상이 무서웠을까?
어머니는 평소에 김치를 담글 때도 다른 집 김장하는 것보다 더 많이 담그셨다. 어머니는 평생 그 김치도 머리에 이고 다니셨다. 남정네 혼자서 아이들 건사하고 사는 집, 노인들만 사는 집, 여자가 아파서 반찬을 제대로 못 만들고 사는 집 등 어머니가 찾아다니시던 집들은 사연이 다 제 각각이었다. 어머니의 사연 중에 나도 들어 가 있다.

어머니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세상에 태어난 나는 어머니의 근심거리가 되었던 때가 많았다. 맏이면서 맏이답지 못했고, 학생 시절에는 돌출행동을 하기 일쑤였다.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일찍 교사가 되어 월급을 타 올 때도 나는 소설을 쓴다고 집을 멀리 떠나 있거나 혹은 방 안에서 문을 걸어두고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너는 내 딸이지만 참 대단해. 너는 천사야.”
어머니는 정말로 나를 대단하게 여기셨을까? 나를 정말로 천사라고 생각하셨을까?

어머니는 건강하셨다. 평소에 병원을 다니시던 분이 아니었다. 그러나 병원에 검사받으러 가셨던 어머니는 암 진단을 받으셨고, 이미 암은 온 몸에 퍼져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병원에서는 3개월 사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40일 만에 하나님 나라에 가셨다. 암 진단을 받은 그 순간부터 어머니의 시간은 온통 복음전도에 매진하셨다.

‘어머니’라는 아름다운 이름,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특별하고 아름답지만 나의 어머니 역시 참으로 아름답고, 참으로 특별하셨다. 어머니가 세상에 주셨던 사랑이 내 가슴 깊이 고이고 고이다가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크리스챤 신문 지면을 통해 매 주마다 어머니 이야기를 할 수가 있게 되어서 참 기쁘고 감사하다. 나의 어머니 이야기가 연재되는 동안 사람들 마음이 따뜻해지면 좋겠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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