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립다 ②
엄마가 그립다 ②
  • 박은자(동화작가)
  • 승인 2015.02.0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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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영운 권사 이야기
▲ 박은자사모
어머니가 나를 찾아와 한참을 기다리셨다. 하지만 계속 밀려드는 수강생들로 인해 어머니를 쳐다볼 여유가 없었다. 피아노 열다섯 대는 꽝꽝 울려대고, 레슨을 기다리면서 이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들이 이론공부하는 모습을 들여다보더니 중얼거리신다.
“내가 좀 알면 가르쳐 줄 텐데.......”
지나가다가 어머니가 중얼거리시는 소리를 듣고 혼자 생각했다.
‘노인네가 무슨.......’

생각해보니 그 때 어머니 나이는 지금 내 나이보다 적은 나이였다. 어머니는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었지만 많은 나이가 아니었다. 결코 노인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엄마는 젊은 사람이 아니라 노인네였다. 엄마와 스무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녀사이가 아니라 자매 같다는 말을 해도 나에게 어머니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었다.
왜 그때는 어머니의 젊음을 몰랐을까? 왜 한 사람으로, 한 여자로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만 묶어 두고 횡포를 부렸던 것일까?
아이들이 어느 정도 돌아가고 한가해졌을 때 쯤 어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학원 하루 좀 쓸 수 있니?”

피아노도 아니고 학원을 하루 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기 30평은 넘지? 여기서 일일 찻집을 하면 어떨까?”
30평이 아니라 40평이 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피아노 방이 칸칸이 칸막이가 되어 있으니 일일찻집이 불가능하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신다.
“00 기억하지?”
“네 기억해요. 저 어렸을 적에 교회학교 선생님이었어요.”
“그래. 00가 버거씨병에 걸려 두 다리를 다 잘라낸 것도 알지?”
물론 00의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다.

“00가 손재주가 좋아. 다리가 없어서 그렇지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거든. 취직을 하려면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장애인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는데 250만 원이나 한다지 뭐니? 일일 찻집을 해서 돈을 모금하고 싶은데 네가 학원을 좀 쓰게 해주면 좋겠다.”
“엄마, 학원에서 일일찻집은 불가능해요. 이 장소에서 몇 명이나 손님을 받을 수 있겠어요?”
불가능하다는 말에 어머니의 얼굴에 금세 실망의 빛이 가득해졌다. 딸을 찾아와 그 말을 하기까지 어머니가 얼마나 고심했을지 짐작이 되었다.
“엄마, 일일찻집은 찻집을 빌려서 하는 거여요. 그래야 커피잔 등 모든 것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요.”
“그렇기는 하지만 대여료 주고나면 얼마나 남겠니?”
어머니는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금세 기운이 빠져서 한숨을 푹 쉬셨다.
“엄마, 오토바이 꼭 사줘야 하겠어요?”

“그럼. 오토바이가 00에게는 다리가 되고 발이 되는 건데 꼭 필요하지.”
“취직할 곳은 있고요?”
“그럼. 취직할 곳이 있으니까 내 마음이 이렇게 급한 거지.”
00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병을 얻었고, 몇 번에 걸쳐 두 다리를 모두 무릎 위까지 잘라내는 불행을 겪었다. 처음엔 발목을 잘라냈고, 두 번째는 무릎 아래를 잘라냈고, 세 번째는 허벅지 부분에서 잘라냈다. 양 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잘라냈으니 여섯 번에 걸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여섯 번의 수술을 하는 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어머니는 잠깐 그 상상을 하며 얼굴을 찌푸리셨다.
“그래도 지금은 재발하지 않으니 참 다행이야.”
어머니는 5km가 넘게 떨어져 있는 00네 집을 자주 드나들며 보살피다가 취직을 생각했고, 당장 오토바이를 사 주고 싶어 안달이 나신 거였다. “엄마, 찻집을 얻는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거저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게요.”
②②
“어느 찻집이 장사도 않고 거저 빌려 주겠니?”
“거저 빌릴 수 없으면 돈을 조금만 주고 빌려 볼게요. 대신 손님이 많으면 되잖아요?”
금세 어머니 표정이 밝아졌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어머니 몰래 찻집 대여료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일찻집을 준비하셨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어머니가 소녀처럼 눈을 반짝이며 일일찻집 티켓을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 어머니 마음에 들도록 예쁘게 만들어 드렸고, 티켓을 팔다가 좀 남았다고 하셨을 때는 남은 티켓을 다 사 드렸다.
일일찻집은 대성공이었다. 손님들이 아주 많았고, 찾아온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가 해 오셨을 점심을 좀 얻어먹으려고 했더니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며 당신이 해 온 점심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자 옆에 섰던 집사님이 말했다.

“윤 권사님은 행사 준비로 바쁘신데 어떻게 점심을 준비하겠어요? 그래서 제가 봉사자들 먹을 밥을 가마솥에 해가지고 왔어요. 반찬도 넉넉하니까 많이 먹고 가요.”
어머니는 또 소녀처럼 어여쁘게 웃으시며 자랑을 늘어 놓으셨다.
“얘야, 정말 이렇게 신 날 수가 없구나. 재료값이 전혀 들지가 않았어.”
“어떻게요?”
“세상에, 서로가 한 가지씩 맡는다고 난리가 났어. 어떤 사람은 커피를 사고, 어떤 사람은 쌍화차를 사고 또 어떤 사람은 떡을 해 오고.......”
어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장애인 오토바이 값 250만 원을 모급하기 위해 열렸던 일일 찻집 수익금은 500만 원이 넘었다. 준비 비용이 전혀 들지가 않아서 오토바이를 사고도 돈이 많이 남았다. 남은 돈은 그대로 00에게 전달이 되었다.
00는 그 날 이후 특수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든 씽씽 달렸다. 뒤에 아내를 태우고 다니는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했고, 때로 눈물을 글썽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00를 돕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힘을 합했던 교우들과 이웃들 역시 가슴에 둥근 해가 걸린 것처럼 환하게 빛났다.

지금 다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얼른 장애인 오토바이 하나 사 줘야 해. 밭둑을 엉덩이로 기어 다니며 일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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