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립다 ③
엄마가 그립다 ③
  • 박은자(동화작가)
  • 승인 2015.02.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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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영운 권사 이야기
▲ 박은자사모
엄마, 엄마라는 어휘에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희생을 생각할까? 사랑을 생각할까? 미소를 생각할까? 나에게 엄마는 기도와 동의어다. 어머니는 기도와 전도를 온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다. 어머니는 얼마나 기도하기를 원하셨는지 밤새도록 예배당에 머물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밤새도록 예배당에 있을 수가 없었다. 담임목사님이 전기료 많이 나온다고, 밤새도록 시끄럽고 신경 쓰인다고 어머니 앞에서 노골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그 날 어머니는 몹시 상심해서 내게 오셨다.
“지하라 기도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데, 사택에는 절대로 안 들리는데 시끄럽다고 하더구나. 전기료가 그렇게 많이 나오나? 나 혼자 있을 때는 아예 불을 끄고 기도하는데.......”
“전기요금 내겠다고 하지 그러셨어요?”
내가 마음이 좀 상해서 말하자 어머니가 웃으셨다. 나는 또 말했다.
“아버지한테 말씀하셔요.”
순간 어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머리를 흔드셨다.
“왜 네 아버지까지 마음 상하게 하니? 집에서 기도하면 되지.”
기도하는 자리가 예배당과 집, 그건 너무나 다르다. 아무래도 집에서는 마음껏 소리 내어 기도할 수가 없다.

내가 결혼하던 해였다. 그해 여름 일 주일 동안이나 계속되는 성경학교에 어머니는 음식준비로 무척 바쁘셨다. 교회에 갔더니 어머니가 목사님에게 크게 꾸중 듣고 있었다. 어머니 눈에서는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고, 어머니는 혼나면서도 불린 쌀이 가득 담긴 함지박을 머리에 이었다. 우는 어머니를 따라가며 물었다

“엄마,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고기 삶느라고 샘 가까이 솥단지를 걸었는데, 그 옆에 꽃이 있지 뭐냐?”
“교회 마당에 걸지 그러셨어요.”
“아이들 뛰어노는데 마당에 어떻게 솥단지를 거니?”
“그렇다고 꽃 옆에다 솥단지를 걸면 어떻게 해요?”

“솥단지 걸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연기에 쏘여 꽃이 죽게 되었다고 사모님이 걱정 하시길래 목사님에게는 성경학교 끝난 다음에 말씀드리면 좋겠다고 했더니 금방 달려가서 일렀구나.”
“엄마, 식사는 하셨어요?”
“밥을 어디서 먹어? 집에 가서 먹어야지.”
“엄마, 사모님도 목사님한테 일렀는데 엄마도 아버지한테 이르시지?”
순간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래도 위로가 되셨던 것일까?
“나 혼자 속상하면 그만이지 뭐 하러 네 아버지까지 속상하게 만드냐?”

어머니가 태어나신 곳은 서울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산골 동네로 피난 내려와서도 십 리가 넘는 길을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셨다고 한다. 그 당시 예배당은 아주 작은 집이었는데 성도들이 늘어나 예배당을 지어야만 했다고 한다. 마침 땅을 헌납해 주신 분이 있어서 교인들이 모두 힘을 합해 흙벽돌을 찍어 예배당을 짓는데,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는 스무 살 아름다운 청년, 처녀 시절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렇게 예배당을 함께 짓고, 그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리셨다.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흙벽돌 예배당을 헐고, 다시 건축을 하게 되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그리고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는 자식들 일보다 교회일이 먼저였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시면서 번 돈을 거의 건축에 내 놓으셨다. 건축이 다 끝나고, 사람들을 초청해서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교회에 피아노가 없었다.

어머니가 나를 달래셨다. “대리점에 피아노가 없다는 구나. 주문했는데 좀 시간이 걸린대. 네 피아노 하나님께 바치자.” 솔직히 말하자면 마지못해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이 몹시 상했었다. 차에 실려 가는 피아노를 따라서 교회까지 쫓아가는 유치한 행동을 했다.

교회는 어머니의 기도와 헌신과 눈물이 배여 있는 곳이었다. 그 교회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분이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러했다. 아니다. 교회는 밤새워 기도하는 성도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게 기도하는 성도가 있어야 교회는 성장한다.
어머니는 연회 여신도회 임원과 지방회 여신도회장 등 늘 교회 중직에 있으셨다.
어머니는 각 교회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면 돕기를 주저하는 일이 없으셨다.

어느 날 어머니가 한숨처럼 말씀 하셨다.
“목사님들이 교회 재정 넉넉할 때 후배 목사님들이나 어려운 교회들을 도우면 얼마나 좋아? 조금만 도와줘도 작은 교회들이 벌떡벌떡 일어날 텐데 왜 그렇게 인색한지 모르겠어. 당신 돈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교회 돈인데, 왜 그러는지 참 알 수가 없어. 어려운 후배 목사님들을 도우면 이다음 은퇴하고 나서 그 후배 목사님들한테 얼마나 대접을 받겠어? 00목사님을 얼마 전에 만났는데, 큰 교회에서 목회했으면 뭐해? 은퇴한 지금 초라하시기가 이를 데가 없어. 그렇게 인색하시더니 어느 교회가 그 목사님을 부르겠어? 여신도회 행사에 초청 좀 해 달라고 하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우셨는지 그 날, 눈물을 글썽거리셨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외갓집이 교회에서 멀잖니? 지금은 버스가 다니고 있지만 엄마가 처녀시절에는 버스가 없었단다. 주일날 교회에 오면 먼저 주일학교 교사하고, 주일 예배드리고, 오후 3시에 어린이 예배 다시 드리고, 저녁예배시간 전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야 하는데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었지. 저녁식사 시간은 되고, 식량 부족한 목사님과 사모님께 부담을 안 드리려고 숨어 있으면 사모님이 막 찾으러 다니시는 거야. 그러다가 이렇게 소리치신다. ‘나와서 같이 안 먹으면 우리도 못 먹어요.’ 라고. 할 수 없이 나와서 목사님과 식탁에 앉으면 밥의 양을 늘리려고 푹 끓여 놓았지. 그래도 부족할까봐 옆에는 국수도 삶아놓고.......”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처녀 시절 교회는 행복했던 것 같다. 어머니의 행복은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까지 계속 이어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목회자 때문에 행복한 어머니 얼굴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많이 우시고, 많이 기도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날이 많았다.
마음 아프실 때나 기쁘신 일에도 먼저 기도에 매진하셨던 어머니, 내가 어머니의 기도 십분의 일만 닮아도 참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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