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그립다 ⑤
엄마가 그립다 ⑤
  • 박은자(동화작가)
  • 승인 2015.02.0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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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영운 권사 이야기
▲ 박은자사모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불러보면 가장 먼저 고여 오는 생각들은 내가 엄마한테 불효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불효했던 것보다 더 마음이 애달파지는 것은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엄마보다는 세상을 더 많이 쳐다보았다. 엄마보다는 책을 더 좋아했고, 엄마보다는 내 삶에 더 몰두했다. 지금 내 앞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 있고 또 엄마가 있다면 나는 당연히 엄마와 시간 보내는 것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하시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고, 엄마에게 다정한 딸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오늘 시작하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50년도 더 지난 정말 오래된 기억이다. 아마도 세 살이나 다섯 살쯤 되는 아주 어렸을 때였던 것 같다. 아니다. 기억이 이토록 선명한 것을 보면 조금 더 컸을 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세 살이나 다섯 살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 엄마가 나를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아팠다. 열도 내려가지 않았고, 물도 제대로 못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엄마에게 병원비를 주시면서 얼른 병원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당시 기차역 앞에는 작은 의원이 하나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집에서 의원까지는 2km가 조금 넘고, 의원에서 교회까지는 1km 정도였다.

나를 업고 집을 나선 엄마는 대문 밖에 나서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어. 혈루병을 앓는 여자도 고쳐 주셨지. 한 아이가 아프자 아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서 사정했지. 그랬더니 예수님이 얼른 고쳐 주셨어. 예수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셨어. 나사로가 죽었는데 무덤 앞에 가서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부르셨단다.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 나왔지.”

엄마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의원 앞을 그대로 지나갔다. 엄마는 교회에 가시더니 나를 업은 채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다시 의원 앞으로 다시 갔다. 하지만 엄마는 의원에 들어가지 않으셨다. 대신 나를 등에서 내리시더니 사탕을 한 알 입에 넣어 주셨다. 그리고는 다시 업으시면서 물으셨다.
“병원에 가지 말고 예수님께 병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할까?”
나는 아마 그러자고 대답했던 것 같다. 엄마를 나를 업은 채 거리를 왔다갔다 하면서 다시 기도를 하셨다. 엄마의 기도는 길었다. 그래도 눈을 꼭 감고 있다가 엄마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할 때 얼른 ‘아멘!’하고 말했다. 엄마 역시 큰 소리로 아멘을 소리치셨다. 그 순간 정말 병이 다 나은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물으셨다.

“이젠 안 아프지?”
나는 얼른 그렇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다시 물으셨다.
“그럼 병원에 안 가도 되지?”
나는 또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나에게 또 물으셨다.
“예수님이 고쳐주신 거지?”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가 이번에는 제안을 하셨다. “그럼 다 나았으니까 할머니가 주신 병원비, 예수님께 헌금하자.” 어린 마음에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의 당부는 더 계속되었다. “할머니가 물어보면 병원 다녀왔다고 하자. 병원 안 간 거 아시면 아마 헌금할 돈 내 놓으라고 하실 거야.”

참 이상한 일이다. 엄마 등에 업혀 집에 들어가던 기억은 있는데, 병원에 다녀왔는지 물어보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할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던 해 돌아가셨다.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어느 날, 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그 때, 혹시 나 병원에 안 데리고 갔다고 할머니한테 혼나지 않으셨어요?”
그 기억은 엄마에게도 선명했었나보다. 엄마가 한참을 웃으셨다.
“네가 잠도 안 자면서 자는 척 했지. 그래서 할머니는 너한테 물어 보실 수가 없었어. 그 때는 헌금을 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단다.”
“왜요?”

“살림은 할머니가 다 하고 계셨고, 너희 아버지는 돈 버는 대로 할머니께 가져 드려서 난 단돈 1원도 만져 볼 수가 없었지. 헌금은 하고 싶은데 도무지 돈이 생기지 않는 거야. 그러다 네가 아파서 병원비가 손에 들어 왔는데, 그 돈 헌금하고 싶어서 너를 업고 기도만 했지. 물론 예수님이 널 낫게 해 주실 거니까. 아무려면 의사가 예수님을 따라 올 수 있겠니? 그런데 그날 밤 네가 잠도 잘 자고, 다음날은 밥도 잘 먹는 거야. 예수님이 고쳐 주신 거지.”

헌금하는 것을 너무나도 원하셨던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장사를 시작하셨다.
엄마는 장사를 하시면서 하나님께 마음껏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다.
세월이 한참 지나 장사를 하시지 않게 되었을 때도 돈만 생기면 헌금하시기를 몹시 즐거워하셨다.
엄마에게는 여동생이 두 분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목사님이시다. 엄마는 특별히 여동생 목사님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다. 목사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 드리기 위해 애를 쓰셨다. 한가한 틈을 타서 목사님 댁에 가면 스무 장이 넘는 셔츠를 곱고 예쁘게 다려놓고 오셨다. 동생 목사님이 엄마에게 용돈을 자주 주셨다. 엄마는 동생 목사님이 준 용돈도 헌금하고 담임목사님을 대접하는 일에 아끼지 않고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 엄마가 정말 얼마나 예쁘셨을까?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용돈을 드린 적이 없다. 용돈을 드리기는커녕 학원을 운영하면서 공부하는 나를 대신해 아들을 키워주시는데도 수고비를 드리지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어려울 때마다 엄마에게 손을 벌렸다. 엄마는 한 번도 안 된다고 하신 적이 없다.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절대적인 후원자이셨다.
엄마, 늘 기도 하셨던 엄마, 하나님께 예물 드리기를 가장 기뻐하셨던 엄마, 나는 오늘도 엄마가 그립다.
사람들이 나에게 말한다. 엄마를 닮았다고. 생김새도, 성품도, 음식 솜씨도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다행이다. 엄마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최고의 칭찬이다.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의 칭찬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칭찬 말이다.
“네가 나를 닮아서 참 기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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