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표절 사태 끝장토론회도 결국 '반쪽 행사'
신경숙 표절 사태 끝장토론회도 결국 '반쪽 행사'
  • 신효령 기자
  • 승인 2015.07.1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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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 표절 사태의 진실 찾기
소설가 신경숙(52) 표절 사태와 관련한 후속 토론회가 열렸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아닌 각자의 의견 개진으로 마무리돼 아쉬움을 남겼다.

표절 파문에 휩싸인 당사자 신경숙과 한국 문학에 작동하는 '문학권력'으로 지목된 창작과비평(창비), 문학동네(문동) 등 대형 출판사 편집위원들이 불참해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는 지적이 높다.

15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문화연대와 인문학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달 23일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가 공동 개최한 토론회의 후속 논의장으로 마련됐으며,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6시 15분경 끝났다.

지난 2000년 신경숙 표절 문제를 제기한 문학평론가 정문순은 이날 오전 토론회 1부에서 "신경숙은 문단에서 진영논리가 설 공간을 잃으면서 문단이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기획하고 새로운 이윤 동기를 개척한 문화상품으로서 효과적으로 소비됐다"고 밝혔다.

정 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사건의 공론화가 한 사람을 끌어내리거나 문학계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괴물을 만들어낸 문단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를 물갈이하지 않는다면 문학에 관한 한 진짜 환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도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경숙 문학의 부상을 막지 못한 대가로 문학에 환멸의 시대가 온다면 정당한 대가라고 해야 할 것인가"고 반문하며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을 원치 않는다면 그 작업의 첫 삽을 뜨는 일은 90년대 문단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오후에 진행된 토론회 2부에서 "수백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에서까지 이름이 꽤 알려진 대표적인 작가와 또 한국을 대표하는 출판사와 비평가들의 이름이 순식간에 오명이 된 상황은 큰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캔들 자체를 소비하는 호사가들이나 평소에 단 한 편의 한국 소설도 읽지 않는 냉담자들이나 그간 문단 주류때문에 소외와 분노를 겪어온 사람들 중 일부는 이번 사태가 자신의 포지션을 합리화해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내심 기뻐하거나 들떠 있는 듯 했다"며 "그러나 오늘의 사태는 매우 위태롭다.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땅 속으로 처박히고, 반지성과 반문학의 풍조에 독서문화와 공론장 자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한국 출판산업과 독서문화는 위기에 처해 있어 매년 부도기업이 속출하고 편집자들과 일자리를 잃고 있다. 문학청년들과 연구자들은 갈 데가 없이 정신적·육체적 기아선상에 있다"며 "미래 자체를 암울하게 바라본다. 차라리 오늘의 사태는 그 결과의 하나거나 더 나쁜 미래의 징후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천 교수는 창비와 문동은 단지 '문학' 분야의 잡지와 '문학 기업'이 아니라 한국 출판문화와 지식인 공론역의 중요한 두 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문학이 존재하는 그 자체에 연관된 공사(公私) 간의 넘어서기 힘든 모순 속에서 사유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창비·문동이 연루된 지배구조와 적폐를 창비·문동 주체가 스스로 성찰하고 극복해야 하며, 창비와 문동 헤게모니 구도의 주변과 바깥에 있는 지식인·문학인들이 함께 새로운 질서의 추진을 통해서만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학 권력은 실제 힘(인력과 자본)에 비해 더 많은 상징권력을 갖는다. 이런 점이 이번에 잘 드러났다"며 "게다가 문단 안에서도 강력한 '선생님' 권력을 가진 비평가는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비평가들에 대한 고발과 혐오가 번지고 있지만, 오늘날 문학비평가들의 평균적 지위란 매우 한심하다. 도무지 존재 근거를 알 수 없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창비의 주요 상징자본은 1970~80년대에 걸친 백낙청과 출판사의 저항에서 획득됐다"며 "창비의 문학 쪽 편집위원의 문학적 입장이 백낙청의 입장 외의 독자성이나 의의를 가진 것인지 의문이다. 백낙청 체제가 오늘날 창비의 한계에 주요한 이유가 된다고 봐야 될 듯 싶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국문학과 교수는 "창비나 문학동네가 진정으로 반성한다면 문예지를 폐지하거나 출판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비평지를 창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토론자인 소설가 김남일 실천문학 대표는 "주변에서 상처 입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 자리에 공적인 언어로 무언가를 말해야 겠다고 생각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며 "지금까지의 태도를 봐서는 반성할 가능성도 없다고 본다. 현재의 지위를 내놓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밝혔다.

토론회 3부에서 이동연 한국문학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지배적 문학의 장에 위치한 출판사들과 문학단체들이 그간 자신들이 스스로 지배적 문학의 장 안에 참여하고 심지어는 동일한 문학 권력의 장 형성에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신경숙 표절 사태를 통해 자신들이 지배적 문학의 장에 공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적 문학장을 보존· 유지하려는 창작, 비평, 출판, 문단, 담론 진영과 이들을 전복하려는 새로운 문학장의 주체 형성과의 싸움이 바로 신경숙 표절 사태의 핵심"이라며 "중요한 것은 이들을 모두 문학장의 구세력으로 규정하고 이 구세력에 맞서 새로운 문학장의 출현이 가능한가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신경숙 표절 사태로 창비나 문학동네가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는 문학장의 이해관계 하에 놓여 있는 세력들은 출판시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문학권력의 존재를 오히려 반길지도 모르겠다"며 "마치 문화자본독점에 대한 해체가 한국문화산업의 시장기반을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창비와 문학동네의 몰락은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도 많다"며 "그러나 새로운 문학장을 형성하려는 실천들에 대한 비평운동과 문학인들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요청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홍기돈 카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현재의 지배적 문학장의 세력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출판자본이라든가 언론권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편"이라며 "그들이 추진해나가는 것은 문학의 연성화(軟性化)"라고 지적했다.

앞서 신경숙 작가가 절필선언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문학은 원래 다양한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표절했으니까 앞으로 글을 쓰지 말라는 게 폭력적이다. 글을 쓰는 게 맞고, 그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임태훈 인문학협동조합 미디어기획위원장은 "한국문학 재생산의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에선 국문과와 문창과가 사라지고 있다"며 "학과가 아니라 아예 대학이 사라지고 있다. 학령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서다. 앞으로 4~5년 사이에 출판 시장은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출판계 어딜 들여다봐도 곡소리가 가득하다. 실적 전망이 어둡다보니 신규 채용 규모도 줄어들고 있다"며 "출판 생태계가 사람을 제대로 길러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신경숙 사태는 이 와중에 터졌고, 우리는 사양 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문학의 기초적인 토대인 출판생태계를 시장기반 수익 창출에서 공공기반 비용조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읽고 싶은 책, 갖고 싶은 책을 중심으로 느슨한 사회적 연대를 구성하고, '펀딩(funding·자금조달)'이라는 이름에 맞는 현실성 있는 설계를 갱신해나가는 기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는 신경숙 표절 파문과 관련해 '문학권력'을 비판한 평론가와 작가, 국어국문학자 10여명이 첨석했다. '문학 권력'으로 지목된 창비와 문학동네 편집위원은 참석을 거부해 '반쪽 토론회'로 만들었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은 "내가 만약 편집위원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논의를 하기 위해 나왔을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많이 고민한 것 같다. 창비와 문학동네가 이유는 밝히지 않고 공식적으로 불참을 통보해 왔다. 문학동네와 창비를 비롯해 신생 문예지 관계자들도 모이는 제3라운드를 제안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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