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4·19 앞서 '이승만 퇴진' 종용 비밀특사 파견
美 4·19 앞서 '이승만 퇴진' 종용 비밀특사 파견
  • 노창현 특파원
  • 승인 2015.07.23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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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4.19앞서 '이승만퇴진' 종용 비밀특사 파견…월터 저드 특사
미국이 4·19혁명보다 근 1년 앞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1959년 여름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하원의원 월터 저드 특사를 비밀리에 보내 이승만 대통령의 퇴진을 권유한 것이다.

뉴시스가 21일 입수한 미외교연구협회 '오랄 히스토리(구두 역사)'에 따르면 4·19 혁명 당시 미 대사관 부대사였던 마샬 그린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비밀특사로 월터 저드 의원을 한국에 보내 이승만 대통령이 퇴진하고 후계자에게 정권을 넘겨줄 것을 종용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미 대사관 정무과 윌리엄 와츠 서기관도 별도의 증언회고록을 통해 "저드 특사를 비밀리에 경무대로 안내해 이 대통령과의 면담 자리에 배석했다"고 밝혔다.

당시 미연방 하원의원인 월터 저드 특사의 행적은 미국 정부의 공식 채널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다. 와츠 서기관은 1995년 8월7일 미 외교연구위원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36년 간이나 비밀로 유지한 역사의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아이젠하워의 비밀특사는 국무부를 통해 이 대통령이 더 이상 통치하기 어려운 건강 문제에 직면했고 30대 비서 박찬일과 자유당의 일부 관료에 의해 국사가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데 따른 특단의 조치였다. <뉴시스 2015년 7월 22일 송고기사 참조>

더 이상 방치할 경우, 한국 정국이 급격한 혼란에 휩싸이고 동북아의 불안감이 고조될 수 있다고 판단, 이 대통령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는 저드 의원을 비밀 특사로 보내 사퇴를 종용하게 된 것이다.

저드 의원은 1943년부터 1963년까지 연방하원을 10선이나 한 베테랑 정치인으로 주이덕(周以德)이라는 한자 이름도 지닌 동북아 문제 전문가이기도 했다. 특히 골수 반공주의자로 이승만 대통령과 깊은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대통령 중임 제한을 없앤 '사사오입' 개헌으로 3선에 성공한 이 대통령이 1960년 대선을 앞두고 가장 강력한 정적인 진보당 당수 조봉암을 제거하는 시나리오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1958년 1월 말, 조봉암은 국가보안법과 간첩죄 혐의를 받고 진보당 주요 간부들과 함께 체포됐다. 1심에서 간첩죄는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2심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해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했다.

당시 언론은 건국 내각에서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조봉암을 간첩으로 모는 것에 대해 강한 의혹을 제기했으나 자유당 강경파는 아랑곳하지 않고 1959년 7월 3심에서 확정 판결이 난 지 하루도 안 돼 사형을 집행했다.

▲ [단독] 美 4.19앞서 '이승만퇴진' 종용 비밀특사 파견…마샬 그린 증언회고록
한편 대법원(주심 박시환 대법관)은 2011년 1월20일 진보당의 당수로 북한과 내통해 평화통일을 주장했다는 혐의로 처형된 죽산 조봉암의 재심 사건 선고 공판에서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은 4·19 이전까지 이승만 정권을 방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가 있을 때마다 항의와 경고의 뜻을 전달했다. 특히 3대 대선에서 무소속 출마해 30%대의 표를 획득한 조봉암을 간첩으로 체포한 진보당 사건은 이승만 정권에 대한 회의감을 결정적으로 증폭시켰다.

급기야 1958년 12월24일 보안법 파동 때 무술 경위를 동원해 야당 의원들을 감금하는 일이 발생하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당일 즉각 경고 서한을 보냈고, 이틀 뒤엔 이 대통령과 절친한 월터 저드 의원이 하원을 대표하여 강한 유감의 전문을 보냈다.

1959년 새해 들어 미국은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1월8일 다울링 대사의 본국 소환을 발표한 것이다. 주재국 대사의 본국 소환은 양국 간에 아주 큰 외교적 분쟁이 있을 때 행하는 조치였으나 초기 한국 정부는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윌리엄 와츠의 증언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외교는 이 대통령의 전유물이었다. 다울링 대사가 경무대에 들어가 본국 소환을 알렸지만 이 대통령은 '그러면 빨리 다녀 오세요' 라고 별일 아닌 듯이 인사를 했다"고 전했다.

다울링 대사는 1월18일 한국을 떠나 2월18일까지 무려 한 달을 자리를 비웠다. 보안법 파동에 따른 한국 정부의 행위에 대한 강력한 반대 표시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강경파의 무리수는 계속됐다. 그해 4월에 '여적' 필화 사건으로 경향신문이 강제 폐간됐다.

미국은 조봉암 재판과 관련, 주미 대사를 통해 사형 집행만은 피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마저 무시하고, 대법원 확정 판결 다음날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마침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상태가 심각하고 정무를 직접 관장하지 않는다는 종합적인 보고를 받고 비밀특사를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공식 경로를 통하면 내정 간섭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저드 하원의원을 보내 친우로서 충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저드 의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사퇴 권고'라는 어려운 밀명을 받아들였다.

이 대통령으로선 장제스(蔣介石) 지지파이자 반공주의자인 저드 의원이 사실상 유일한 미국의 소통 창구였다. 한국에 도착한 저드 의원은 와츠 서기관의 안내로 경무대로 가서 이 대통령을 만났다. 그 자리엔 박찬일 비서도 있었다. 먼저 가벼운 환담을 나눈 다음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마샬 그린 부대사는 증언회고록에서 "저드 의원이 '연만하신데 이제 후계자를 양성하시고 물러나시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우정어린 충고를 했을 때 이 대통령은 그냥 웃어 넘겼다"며 이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고 밝혔다.

윌리엄 와츠 서기관의 경우, 증언록에서 '사요나라 해프닝'으로 대경실색한 일화를 전해 눈길을 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박찬일 비서가 내게 눈짓을 보내서, 시간이 다 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저드 의원에게 '이 대통령이 다음 약속이 있으니 일어나시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까 저드 의원이 '대통령 각하, 만나뵈어서 반가웠습니다. 사요나라(Sayonara)'하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반일 감정을 잘 아는 저드 의원이 일본말로 작별 인사를 하다니…. 순간 이 대통령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혈압으로 쓰러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당황한 나는 저드 의원을 꽉 붙잡고 이 대통령에게 '사요나라라는 말이 얼마나 나쁜지 잘 몰라서 한 것'이라고 둘러댔다. 정말 깜짝 놀랐다…"

당시 한·일 관계와 이 대통령의 반일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드 의원의 '돌발 발언'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퇴진의 용단을 내려달라는 친구의 간곡한 충고를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 이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움 섞인 야유였던 것이다.

와츠 서기관은 회고 증언에서 "이 대통령이 기력이 쇠약한 상태로, 분명히 용태가 좋지 않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박찬일 비서에 대해 "제정 러시아의 라스푸틴(Rasputin)같은 섭정을 하고 있다. 대통령을 업고 전횡을 휘두르는 그는 국민들의 원성의 제1호"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이젠하워의 '부드러운' 개인 비밀 특사 파견은 그렇게 무위로 돌아가는듯 했다. 그러나 약 반년 뒤 4·19 혁명이 일어났을 때 약효가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마샬 그린 부대사는 증언 회고록에서 "이 대통령이 맥코너기 미국 대사를 만나 후 순순히 물러난 이유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9년 여름에 월터 저드 의원을 비밀 특사로 보내 이미 하야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을 미국 정부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재미한국사료연구가 김태환 씨는 "이상의 증언에서 보듯 이승만 대통령은 자진 하야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미국이 강제 퇴진시켰고 하와이 망명 역시 권토중래를 노리는 이 대통령의 망상을 막기 위해 CIA 비행기에 태워 유배시킨 것"이라며 "자진하야는 역사의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하야 작전은 주한 부대사 마샬 그린이 기획하고 월터 맥코너기 대사가 실행에 옮긴 것으로 이후 마샬 그린 부대사는 미 국무부에서 '쿠데타 마스터(CoupMaster)'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고 밝혔다

뉴욕=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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