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인
히틀러를 선택한 독일인
  • 정문재 부국장 겸 산업부장
  • 승인 2015.08.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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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과오입니다. 당신은 위대한 조국을 우리 세대의 가장 선동적인 정치가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 비열한 인간은 우리나라를 깊은 수렁 속에 빠트릴 것이고, 우리들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당신의 잘못된 행위를 이유로 당신의 무덤 앞에서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참모차장을 지낸 루덴도르프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의 전보를 보냈다.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표현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루덴도르프는 참모차장으로 힌덴부르크 참모총장을 보좌했다.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간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루덴도르프는 전역 후 극우파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민족주의를 강조했다. 그래서 한동안 히틀러와 나치스를 가까이 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실상을 파악한 후에는 그를 멀리 했다. 큰 형님이나 다름없는 힌덴부르크를 거세게 비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독일의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히틀러를 경멸했다. 무책임하고, 교활한 선동가로 여겼다. 나라를 큰 혼란에 몰아넣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히틀러는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서명한 '독일 국민 보호법'에 따라 독재 권력을 확보했다. 비판 여론은 '허위 사실 유포행위'로 다스렸다. 정권에 대한 반대는 '국가안보 위협'이라며 짓밟았다. 비판 세력은 사라지고, 지지자만 남았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소망을 꿰뚫어봤다. 평범한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일자리'였다. 독일은 그 당시 대규모 실업으로 몸살을 앓았다.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는 독일인들에게 큰 희생을 요구했다. 독일 국민들은 막대한 전쟁 배상금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미국과 영국은 배상금 부담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프랑스가 말을 듣지 않았다.

전승국과 독일은 우여곡절 끝에 '영 플랜(Young Plan)'에 합의했다. 1929년 화폐가치를 기준으로 80억 달러(2015년 현재 가치 1100억 달러 상당)를 59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상환토록 했다.

영 플랜은 그 이전의 배상 방안보다 부담이 작았다. 하지만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1929년 1월 이후 1년 동안 실업자가 180만 명에서 280만 명으로 늘어났다. 1930년 말에는 실업자가 무려 500만 명으로 급증했다.

독일 국민의 삶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실업자는 늘어난 반면 실업 수당과 정부 보조금은 축소됐다. 더욱이 세금 부담마저 확대됐다.

히틀러는 1933년 2월 1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앞으로 4년 안에 실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공허한 허풍처럼 들렸지만 히틀러는 약속을 지켰다. 1936년 미국의 실업률이 여전히 20%에 달했지만 독일에서는 실업이 거의 사라졌다.

케인즈식 경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한 결과였다. 히틀러는 집권하자 마자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사회 인프라를 구축했다. 독일 전역에 아우토반이 건설된 것도 이 때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를 지지했다. 500만 명의 국민이 일자리를 얻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히틀러 지지자들은 수 천만 명에 달했다. 삶의 안정을 찾은 만큼 웬만한 것은 용인했다. 이런 암묵적 지지가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을 고통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대량 실업은 심각한 사회 불안을 낳는다. 특히 젊은이들의 실업은 미래와 희망을 삼켜버린다. 자아 실현의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면 그곳은 '죽은 사회'다. 구성원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파괴적인 방향으로 분노를 터트릴 수 있다.

국가 경쟁력도 좀먹는다. 산업 현장의 알토란 같은 노하우도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 산업 현장에서의 암묵지(暗默知)는 선배들과의 교감을 통해 익힐 수 있다.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20대 실업자가 41만 명에 달한다. 사상 최다 수준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1년 이상 낭인 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이 수두룩하다. 아예 구직활동을 포기한 젊은이까지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웃돈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년 실업에 관한 한 노동계는 목소리를 높일 자격이 없다. 이들의 주장에 밀려 청년 실업 문제를 방치하는 것도 참회와 척결의 대상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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