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세대로서 YS생각하기
IMF세대로서 YS생각하기
  • 손대선 기자
  • 승인 2015.12.03 1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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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안팎의 세대에게 김영삼 전 대통령만큼 환호와 야유가 교차하는 인물도 드물다.

취임 초기 그의 삶을 더듬다보면 우리 사회가 진화하기 위한 굵직한 선결과제가 그 당시에 해결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 정치생명을 건 도박과도 같은 과단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숨 가쁜 성취에 우리는 환호했다.

독재정권 시절을 겪은 선배세대들에게 김 전 대통령이 민주투사로 각인됐다면 우리 세대에게는 악의 뿌리를 신속히 제거하는 현실속의 최고 권력자로 자리 잡았다.

한 시대가 저물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97년, IMF구제금융. 초유의 국가부도 사태의 여파는 컸다.

잘 나가던 기업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고, '고용유연화'를 명분으로 직장에서 쫓겨난 이들은 거리를 헤맸다. 대학생들에게 휴학은 현실이었고, 취업은 사치였다.

신문에는 살길이 막막해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의 안타까운 사연이 날마다 도배됐다. 분유를 훔치다 걸려 선처를 호소하는 주부의 모습도 오버랩 된다.

사장, 노동자, 주부, 학생들 모두가 가장 실패한 대통령으로 김 전 대통령을 지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참사, 그리고 김일성의 죽음을 지켜본 뒤 만학도로서 대학에 들어온 나 역시 그 의견에 쉽게 동의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일궈낸 업적은 그렇게 30~40대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지워져나갔다.

그는 1998년 퇴임사에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말했다.

26세에 국회의원이 돼 9선을 하고 대통령까지 지낸 인생은 얼핏 화려해보였지만 말년은 가시밭길이었다.

그의 재임기간 만들어진 명예퇴직, 비정규직, 아웃소싱, 사내하청은 아직도 지난한 난제로 이 사회에 남아있다.

사후(死後)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세대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상도동계 사람들은 IMF 부채에 짓눌려 인생의 말년을 보낸 김 전 대통령이 "내가 죽으면 후손들이 나를 평가해 줬으면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전한다.

IMF에만 매달려 그가 일궈낸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80~90년대 그와 함께 우리사회가 이룬 빛나는 성취의 절반을 부정하는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죽음의 단식에서 불러내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우리 자신이었다.

즐거운 기억을 떠올린다.

이 땅에서 쿠데타의 종자를 잘라낸 하나회 척결, 지하자금의 흐름을 끊은 금융실명제, 음습한 권력자의 곳간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한 공직자재산공개, 일제침략의 상징과도 같았던 조선총독부 폭파, 그리고 무엇보다 최초의 문민정부 수립….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고 외쳤던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마지막으로 '통합'과 '화합'이란 화두를 남기고 떠났다.

오늘 오후부터 서울광장에 분향소가 차려진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IMF세대의 일원으로서 이제 그의 영정에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고 싶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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