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연극 두편의 위로
'상실의 시대', 연극 두편의 위로
  • 이재훈 기자
  • 승인 2016.11.04 1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연극 '두 개의 방'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상실된 시대'다. 최근 나란히 첫 선을 보인 연극 '불역쾌재'와 '두 개의 방'은 나라에 대한 믿음을 잃은 상실감을, 휴머니티를 통해 자그마한 위로를 건넨다. 복잡하고 거대한 정치라는 기형적 구조물에 공감이라는 작은 집을 세운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은유적인…불역쾌재

'환도열차' '햇빛샤워'로 최근 연극판을 주름잡은 연출가 겸 극작가 장우재가 신작. 세상에 대한 치열한 성찰로 사회의 단면을 그려온 장 연출은 이번에 거리감을 뒀다.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관동만유(關東漫遊)'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으로 느릿하고 관조적인 시선을 던진다. 조선시대의 두 대감 '기지'와 '경숙'이 왕의 질문을 품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왕은 두 대감 중 한명을 죽여야 한다. 명분을 만들어,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 가상의 조선인 이 나라는 몇년 전 배가 침몰되는 참혹을 지켜봐야 했다.

왕인 세자인 시절이다. 그의 친구를 포함해 청년 7명이 배를 한강에 띄웠다. 그 배가 침몰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지켜봐야 했고, 누군가는 지켜볼 수 없었다. 그리고 상처가 똬리를 틀었다. 왕은 무기력하며 그를 움직이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나라가 아닌 자신의 앞길만 궁리한다.

미니멀한 무대에 연륜과 고뇌로 세월의 주름을 잡는 풍류의 경숙 역에 이호재, 분별력을 지닌 기지 역의 오영수가 방점이다. 불역쾌재,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허허실실 전법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제자였던 왕에게 따끔한 고언을 건네고, '쿨'하게 세상과 작별한다. 무기력한 왕은 또 살아남고, 우는 건 백성뿐이다. 장 연출은 기존에 든 현미경 대신 이번에 망원경을 들었는데, 해상도가 짙다. 6일까지 LG아트센터.

◇진실의 민낯…'두 개의 방'

38년 만에 국내 초연한 리 블레싱의 '두 개의 방'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놀랍도록 파고든다. 1980년대, 미국인들이 중동지역에서 빈번히 납치를 당해 희생당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지만, 정부와 언론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2016년 한국이 겹쳐진다.

테러라는 끔직한 난제를 원료로 삼은 이 연극은 110분간 진행되면서 종교, 이념, 국제 정치, 정부라는 거대한 이름에 지워진 개인 등의 여러 바퀴를 굴린다. 특히 인질로 잡혀간 남편을 둔 레이니와 그녀를 통제하려는 주변 인물 이야기가 가장 큰 바퀴인데 정부, 언론의 엇갈린 입장에서 '개인의 비극'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다는 점이 탁월하다.

무엇보다 숨이 급격하게 막혀 오는 부분은 "우리한테 필요한 건 침묵"이라고 주장하는 정부다. "부인과 모든 인질 가족들이 침묵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우리 일을 할 수 있게 기꺼이 협조하는 것."

정부가 특정한 누군가의 이익에 농단을 당하고, 정작 국민은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지금에도 '국정' '정치'라는 미명하에 '침묵'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여전히 대한민국에도 있다.

제목 '두 개의 방'은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인질이 돼 어떤 상황도 가늠할 수 없는 무력한 개인과 인질의 아내라는 이유로 정부의 감시대상이 된 개인, 두 사람을 빗댄 것이다.

숨이 턱턱 차오른 가운데서도 그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인 유대감이다. 거대한 시스템 대신 우리가 믿을 건 사랑이다. 정치적인 혼란 속에 헤매더라도, 그나마 희망이라는 끈을 잡게 해주는 이유다. 13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뉴시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