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유럽인들이 트럼프의 선거 승리를 단순한 충격이 아닌 배신감으로 느끼는 가운데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안보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은 "트럼프는 새로운 권위주의와 국제적인 광신적 애국주의(chauvinist) 운동의 선구자"라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독일에는 수십년 간 미군 4만7000명이 주둔해 있다. 수천 명의 병력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됐을 때에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세계온난화 대응과 같은 여러 이슈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연대를 구축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기간 여러차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서 발을 뺄 것을 시사하거나, 유럽국가들에 방위비 분담을 늘릴 것을 요구해왔다.
트럼프 당선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브로맨스’도 우려 사항이 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감을 표해온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병합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했고, 나토 동맹국이 공격받더라도 자동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시대'에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일명 ‘프리덤 프라이’(freedom fries)로 비화된 미국과 유럽 간 갈등보다 더 큰 균열을 대비해야 할 수도 있다. '프리덤 프라이'는 프랑스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한 데 대해 미국의 많은 의원들이 강한 불쾌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2003년 미 하원은 프랑스에 분풀이를 하는 차원에서 의회 구내식당에서 감자튀김을 가르키는 '프렌치 프라이'나 '프렌치 토스트'를 '프리덤 프라이'로 바꾸도록 지시했었다.
독일은 트럼프의 당선이 유럽에서 나치 세력을 깨우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뒤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언급은 서구의 터부가 돼왔으며, 국수주의는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독일에서는 군사력 증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벨기에와 핀란드에서도 트럼프 시대를 맞아 보다 독립적인 안보 전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독일 국방장관은 “유럽은 스스로 더 잘 경계하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럽연합(EU) 내 경제규모 1위인 독일은 경제력을 국방력에 연계하는 ‘정상적인 국가’(normal nation)'가 되기엔 엄청난 장애물을 갖고 있다.독일 잠수함 4척 중 한 척만이 가동되고 있으며, 독일 해군 헬기 43대 중 제대로 운영되는 것은 7대 뿐이다. 무엇보다 독일 국민은 군사력 증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선거 승리가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군 창설 회담 등의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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