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권력자·부자가 선하게 그려진다면…'조작된 도시'
영화에서 권력자·부자가 선하게 그려진다면…'조작된 도시'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7.02.2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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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의 한 장면.
권력자와 부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고, 남이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는 만큼 평소에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유사시에는 남보다 앞장서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자 헬리콥터 파일럿으로 참전해 일반 병사와 똑같이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던 일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처럼 권력자와 부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 국민은 이들을 존경하고 따르게 된다.

그러나 한국, 최소한 영화 속 권력자와 부자는 정반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냥 뜻 모를 외국어일 뿐이다.

권력자는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을 거침없이 짓밟고, 부자는 한 푼이라도 더 챙기기 위해 서민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이들에게는 일말의 양심도, 최소한의 도덕관념도 없다,

그들은 돈으로, 힘으로 자신의 부정을 덮으려 하고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 한다. 더 심한 것은 그런 자들일수록 자신의 피붙이는 끔찍이 위한다.

지난 9일 개봉해 19일까지 2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지창욱·심은경·오정세의 범죄 영화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도 그런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반전이 묘미인 영화라 스포일러를 최소화한 줄거리는 이렇다.

“‘권유’(지창욱)는 FPS(1인칭 슈팅 게임)계에서는 완벽한 리더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PC방을 전전하며 놀고먹는 ‘흙수저’ 출신 백수다,

어느 날 PC방에서 우연히 휴대폰을 찾아 달라는 낯선 여인의 전화를 받고 모텔로 간 그는 이후 그 여인, 그것도 10대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으로 몰린다.

모든 증거는 짜 맞춘 듯 권유를 범인으로 가리키고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아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교도소 안에서 조폭들에게 생명을 위협받던 권유는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

대인기피증을 가진 초보 해커 ‘여울’(심은경), 2% 부족한 특수효과 전문가 ‘데몰리션’(안재홍), 용산전자상가 엔지니어 출신 실업자 ‘용도사’(김민교), 교수가 맞나 싶은 ‘여백의 미’(김기천) 등 권율의 게임 멤버들이 그를 돕기 위해 모인다.

그들이 잔악무도한 살인범 권유를 믿게 된 것은 여울이 해킹을 통해 사건의 진실이 단 3분16초 동안 누군가에 의해 완벽하게 조작됐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왜 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일까. 하나같이 흙수저인 멤버들은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가공할 적을 향해 자신들의 방식으로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며 반격에 나선다.”

영화는 러닝타임 126분이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손에 땀이 흥건히 고일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결말은 “사이다” “사이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짜릿하고 통쾌하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에서 부자와 권력자, ‘금수저’는 하나같이 권유를 끝까지 짓밟으려 하는 악인이었고, 권유의 처절한 호소를 들어주고, 아픔을 공감해주는 착한 사람들은 모두 흙수저라는 점이다.

지난 2015년 8월 개봉해 약 13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한 황정민·유아인의 범죄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서도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는 세상 모든 악행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그야말로 나쁜 놈이었다.

같은 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한계를 딛고 약 700만 관객을 모은 이병헌·조승우의 범죄 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에서도 재벌과 정치인, 유력 언론인 등 ‘가진 자’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대대손손 유지하기 위해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다.

사실 이 나라만 해도 그간 여러 경로로 드러난 권력자, 부자의 그릇된 행태들은 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합당한 단죄는 이뤄지지 못 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라도 주인공이 그들을 응징하고, 그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렇다. 발상의 전환이다. 오히려 권력자와 부자의 좋은 모습, 선행을 일부러라도 더 부각하는 것이다.

스크린 속 잘생긴 재벌 3세가, 중후한 매력의 정치인이 보여준 그런 모습이 왠지 멋져 보여 조금이라도 흉내 내려고 노력하는 금수저들도 나타나지 않을까.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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