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 동포사회와 신 선구자 운동” >1<
“연변 조선족 동포사회와 신 선구자 운동” >1<
  • cwmonitor
  • 승인 200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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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식 / 연변희망복지촌 설립자


1. 옛 선구자의 고향
옛 만주 땅, 조국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했던 선구자들의 정기가 물씬 배어 있는 곳, 그 후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동북 3성, 중국 전역에 약 200만명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1946년 중국이 공산화 된 후, 우리는 서로 같은 민족끼리 지척에 있으면서도 오갈 수 없이 지냈다. 그래서 그저 멀게만 느껴진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중국 정부가 발행하는 “거민 신분증” 민족란에 “조선” 즉 조선족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2세, 3세를 거치는 동안, 또한 지난 반세기 역사 속에서 조선족들은 고국도, 조국(할아버지 나라)도 거의 잊고 살아야만 했다.

오히려 지난 60년대, 문화 혁명 당시에는 한국이 고국인 조선족들에게는 적지 않은 핍박이 있었단다. 반동의 나라, 미 제국주의의 앞잡이 나라(한국)의 후손들이라 해서 머리에 꼬깔을 씌우고 인적이 드문 한적한 산촌으로 추방, 유배생활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손들이 지금 연변을 중심으로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척박한 땅을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 것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덕이었다.

서울에게 개최된 이 두 운동 경기가 전파를 타고 중국 전역에 보도될 때 고국의 발전상과 고국 동포들의 잘 사는 모습을 함께 보게 된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체결되었고 그 후로 친척방문, 노무초청, 유학, 결혼 등으로 많은 연변 동포들이 고국행 방문길에 오르게 되었다. 50년 묵었던 친척들의 환대와 도움, 중국 약 판매로 얻는 수입.
20배가 넘는 한국 노임 등 연변 동포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한국행 바람에 들뜰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결국 제한된 한국행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브로커들의 말에 현혹되어 집을 팔고 빚을 얻어 소위 가짜 초정장을 산 것이 바로 “초청장 사기 피해”하는 올무에 걸려 들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92년부터 ‘96년까지 집중적으로 발생하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수단과 방법을 달리하여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피해자만도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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