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양과 사역 >1< 회개하는 기도
나의 찬양과 사역 >1< 회개하는 기도
  • cwmonitor
  • 승인 2000.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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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사역자 이춘길 전도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요 14:27)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아 민족과 족속과 열방을 향하여 크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는 사역자로 쓰임 받고 있는 제가 연약한 저의 삶 속에서 모든 순간마다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기에 앞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하시고 영원히 저와 함께하실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저는 김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가난을 벗어 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지 저희 가족은 익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정착한 마을 중심에는 예쁜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그 교회의 이름은 남광 교회였습니다. 옛날 교회에서의 부흥집회는 동네의 잔치처럼 신앙인 외에도 구경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도 동네어른들을 따라 교회에 구경을 갔습니다. 교회 안에는 강대상 밑으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큰북을 누군가가 힘차게 치고 있었고 찬양 소리는 교회 터가 움직일 정도로 크고 우렁찼습니다.
저는 어른들에 떠밀려 맨 앞자리로 나가게되었습니다. 예배도중 목사님께서 손을 들고 기도하면서 죄를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무슨 말씀인지도 모르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두손들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그칠 줄 몰랐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은혜의 체험은 저를 하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부흥집회를 참석한 것을 계기로 언니와 제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핍박이 얼마나 심했던지 “내 주먹을 믿으라”는 아버지의 노여움 때문에 우리는 성경책을 마루에 감추어두고 놀러 나가는 것처럼 교회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갑자기 날벼락 같은 슬픈 소식이 집안을 뒤숭숭하게 했습니다. 바로 큰오빠의 교통사고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오빠는 회복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에 학교 등교 길에 제가 또 쓰러졌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저의 오른쪽 뱃속에 달걀 만한 혹이 만져졌습니다. 방학 내내 한약방을 다니면서 침을 맞고 약을 먹었더니 좋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개학한 다음날 등교 길에 저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고통 속에서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습니다. 저에 몸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핵에 감염되어 있었고 맹장염을 잘못치료하고 방치했던 것이 병을 키워 맹장이 터져 버린 복막염, 그로 인해 뱃속이 온통 고름으로 뒤범벅이 된 것이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상태로 저는 급하게 수술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위험한 죽을 고비를 넘긴 대수술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성공적으로 마쳤고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엄청난 일을 거듭 겪은 저희 아버님께서 충격을 받아 눈이 잘 보이질 않아서 3년 정도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고난을 계기로 미신을 철저히 지키시던 어머니께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을 무척 핍박했던 아버지께서는 10년전 간암으로 투병하시던 중에 간절히 주님을 찾았고 영접했습니다.
돌아가시기까지 일년동안 누워 계셨지만 암병으로 고생하는 환자 같지 않게 큰 고통을 느끼지 않으시고 평안한 모습으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는 점점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 다리가 관절염으로 부어 올랐습니다.
통증 때문에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어 갔습니다. 먹는 것마다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 구토증세가 나타나고, 편두통으로 인해 신경쇠약증세까지 겹쳐 저는 바짝 말라갔습니다.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영혼은 곤고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삶에 기쁨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탕자된 저를 부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88년 11월. 저는 불신자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부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고 남편의 가정도 저의 가정도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한 울타리 안에 여러 가정이 살고 있는 산동네, 남편이 자취하던 월2만원을 지급하는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아침 저희는 방에 새어 들어온 연탄가스로 인해 구토증세를 일으키며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조금만 늦게 병원에 실려갔어도 우린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회복하고 병원 문을 나서는데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이 주어진 것처럼 세상이 온통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두 번째 죽음에서 건져주셨지만 저는 하나님을 기억하지도 않았습니다. 89년 3월. 남편이 인사 발령을 받아 저희는 정읍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서 저에게 다가온 육신의 고통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어느날 밤 열이 40도가 넘게 오르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오른쪽 옆구리 갈비뼈 속이 결려오면서 저는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었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저는 몸부림치면서 울었습니다. 경찰관이었던 남편은 야간근무를 나갔고 아무도 나에게 물 한 모금 가져다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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