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체사의 관점에서 3국을 비교하는 시도다. 중국과 한국은 획의 두께가 일정한 서체에서 두께가 바뀌는 서체를 창작했다. 일본의 가나서체는 처음부터 한자의 초서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흘림 글씨가 주종을 이룬다.
인간의 선험적 심미감각에서 연유한 손글씨를 우리나라는 서예, 일본은 서도, 중국은 서법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달라도 붓글씨라는 창작활동을 하면서 2000여년 전 기록매체인 붓을 통해 여전히 교감하고 있다는 점은 세 나라가 같다.
중국의 한자는 역사가 유구하다. 한자의 기원이 되는 기원전 14세기 갑골문과 문자가 새겨진 청동기 그리고 국내 서예에 영향을 미친 안진경, 왕희지 등의 법첩 등을 선보인다. 국내 갑골문은 중국 갑골문의 대가인 동작빈이 소개한 서울대학교 박물관 갑골문, 숙명여대 박물관 소장 갑골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들이다. 이번 전시에는 숙대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편과 더불어 중국 은허박물관 소장 갑골문 중 완전하게 남아 있는 편의 현지 복제품이 나왔다.
일본의 가나는 실용적이다.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다카마쓰노미야가 전래 긴리(황실)본 ‘다카마쓰노미야가본’의 노래 겨루기 내용 중 ‘간표노온토키키사이노미야 우타아와세(寬平御時后宮歌合)’ 사본, 이야기책 ‘이세 이야기(伊勢物語)’ 고사본, 막부 말~쇼와 초 교토의 상인 다나카 간베노리타다가 고증 연구를 위해 수집한 ‘다나카 조씨 구소장 전적 고문서’ 가운데 가나서예의 면모가 드러나는 ‘만요슈(万葉集)’ 같은 가나서체 자료를 볼 수 있다.
한국의 한글은 과학적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월인석보’ 등 초기 훈민정음체를 볼 수 있는 판본, 조선중기 이후 화려한 꽃을 피운 왕실의 궁체 자료가 나왔다. 필사본 고소설 등에서 아이들이 제멋대로 쓴 듯 개성이 강한 민체도 마주할 수 있다.
관람객이 전시품의 서체에 집중하도록 전시품, 작가, 서체 관련설명을 모두 정보영상 모니터에 담았다. 한·중·일 서체의 변화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개념 영상, 서체 체험 등으로 보는이의 이해도를 높였다.
취임 후 첫 특별전을 개최하는 김재원 국립한글박물관장은 “한중일 3국은 붓이라는 동일한 기록매체를 사용하며 넓은 의미의 한자문화권으로 이웃해 왔다. 동시에 한자, 가나, 한글의 서체를 각국의 미적 감각을 가지고 발전시켜 왔다”고 이번 비교전시를 설명했다. 아울러 “한글은 문자 자질의 우수성뿐 아니라 창제 이후로 끊임없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해 온 문자다. 한글 서체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사업 등을 통해 한글 서체의 발전과 활용을 고민하고 실험하는 작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슴 속에 만권의 책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 그림과 글씨가 된다’는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금언으로 마무리되는 ‘한중일 서체 특별전’은 12월31일까지 계속된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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