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시습이다>(여름산.2013)의 작가의 말이다. 계유정난(癸酉靖難, 계유사화로도 부름)과 병자사화(丙子士禍)는 어린 나이에 왕위를 찬탈 당하고 유배지에서 사약을 마셔야했던 단종의 복귀운동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살육전들은 사육신과 생육신을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로 양분했다. 책은 역사적 관점에서 사육신을 회자하는 것에 반해 생육신 김시습의 삶을 조명했다. 책에 따르면 죽은 자들 뒤에서 고독하게 살아남아야만 했던 불운의 천재 김시습은 ‘신동 김오세(김시습의 본명)’라 불렸지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꿈을 포기한 사람이다.
책은 1인칭 김시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나는 김시습이다’로 시작한다는 말이다. 먼저 김시습에게 천재라는 칭호가 붙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세 살 때 제대로 된 시를 지었는데 화사했던 봄날을 표현한 시다.
무우뇌성하처동 無雨雷聲何處動 / 황운편편사방분 黃雲片片四方分
비도 없이 천둥소리 어디서나나/ 누런 구름 조각조각 사방에 흩어지네.
세 살배기 아이가 지었다고 하기에 한시 규칙에 어긋남이 없다. 후일 김시습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에게 힘이 되고자 계유년(단종 1,1453년) 봄에 있던 과거 시험을 봤지만 낙방했다. 그해 시월 십 일 계유사화가 일어났다.
책은 김시습의 입을 빌려 이는 수양이 어린 임금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조정 대신과 선비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한 사화라고 강조했다. 당시 출사를 하지 못했던 김시습은 사육신들처럼 전면에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종이 상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시습은 붓을 꺾는다.
‘그래, 이제부터 세상살이는 잊고 절로 들어가 내 한 몸 깨끗이 닦자. 대장부가 이 세상에서 도를 행할 수 있었는데도 제 한 몸만 깨끗이 하고 인륜을 모른 체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도를 행할 수 없을 때는 제 한 몸이라도 깨끗이 닦는 것이 옳은 일이다.’-58쪽
이렇게 생각한 김시습은 곧바로 일부러 뒷간에 빠져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썼다. 출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몸부림이었으리라. 책은 사육신의 장렬한 죽음 뒤에 고독하게 살아남은 생육신들의 얼룩진 삶을 그렸다. 김시습이 기이한 이야기인 <금오신화>를 지은 까닭이 담긴 다음 대목을 통해 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단순히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로만 읽을까? 아니면 그 뒤에 숨어 있는 내 마음까지도 읽어 줄 것인가?(중략) 나의 진정한 바람은 훗날 사람들이 이야기의 행간에서 내 삶을 읽어 내고 역사의 진실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종묘와 사직을 위한 일이었다고 미화되고 거짓 명분으로 포장된 상황의 양위가 사실은 왕도 정치를 꿈꾸었던 수많은 선비들의 피와 눈물로 얼룩진 불의한 찬탈이었다는 진실…….’ -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