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임채연기자]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일제 강점 시절 극작가 박재성(1915~1947)에 관한 책이 나왔다. 신간 <극작가 박재성의 아내, 요시코의 편지>(경진출판, 2021)는 편지로 반추해 보는 한 비운의 작가와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박재성은 일제강점기 동경으로 유학한 극작가다. 그는 일본인 아내 요시코를 만났다. 둘은 첫 만남에서부터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경계 없이 서로 호감을 느끼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요시코는 그 문학청년에게 문학적 지원과 지지를 보냈다. 광복 직후 한일 관계가 단절되면서 두 사람이 각각 한국과 일본에 떨어져 지내야 했다. 그후 둘은 편지를 통해 사랑과 신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요절했다.
책은 1946년 가을에서 1947년 여름까지 아내 요시코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유족 박재성의 조카가 보관)를 담았다. 이 편지에 따르면 요시코는 남편 박재성의 열렬한 문학적 지지자였다.
“부디 멋지고 훌륭한 작가가 되세요. 현재의 경험을 살려서 정열적인 감정으로 최선을 다해 주세요. 영원한 빛을 향해 순수한 작가로서 있어 주세요.”(34쪽)
“나는 당신을 위대한 작가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인생의 눈보라도 갈림길도 힘차게 헤쳐 나아갈 것입니다.”(38쪽)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생이별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 터이다. 무엇보다, 편지에는 한 남자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다.
“오늘 해질녘에, 우체통에 여덟 장의 편지 중 재성의 편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잠시 쉬려고 우물가에 발을 씻으러 나갔어요. 그러자 어두컴컴한 무한의 저쪽에는 초이렛날, 달이 하얗고 휘황찬란하게 비추고, 많은 별들은 빛나고 있고, 머리를 숙이면 주위에는 어린잎의 달고, 희미한 향기가 나고 수백 수천 마리의 개구리 우는 소리가 땅에 퍼지고...문득 정신을 차리니 갑자기 외로워져서 당신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요.”(146∼147쪽)
그녀는 조선 통영에 있는 박재성이 자신을 데려오기를 학수고대했다. 그 부름에 응답하여 박재성은 1947년 여름, 밀선을 타고 가 동경에서 재회했다. 하지만 둘은 다시 밀선을 타고 통영으로 돌아오던 중 현해탄에서 풍랑을 맞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가의 나이 33세였다. 민족의 한스런 역사가 한 개인에게 지운 슬픈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이 편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런 사랑 뿐 아니라 한 극작가의 삶과 문학 연구의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1915년 통영에서 태어난 박재성은 유학 당시 동경제국대학교 문예지 '적문문학(赤門文學)'에 희곡 '만추'와 '왕관'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귀국 후에는 서울 극단 현대에서 자신의 창작극 '산비둘기'를 공연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