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유수환 기자]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간 법적 공방의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논쟁 사안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 삼성의 지배구조와 관련이 있어서다.
진보학자인 정승일 사회민주주의센터 대표는 엘리엇의 소송을 '삼성그룹 흔들기'로 진단하고 있다. 정승일 대표는 “엘리엇의 1차적 목표는 삼성물산이지만 최종목적은 삼성전자 및 삼성그룹 전체를 흔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일가가 삼성물산 보유 지분이 거의 없는 상황을 엘리엇이 공략했다는 이유에서다. 이건희 일가의 삼성물산 보유지분은 1.37%다. 하지만 삼성그룹 계열사 중 삼성SDI(7.4%), 삼성화재(4.8%), 삼성생명(0.15%)가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연결고리를 엘리엇이 파고들었다는 것이 정 대표의 분석이다.
♦ 엘리엇 '삼성 흔들기' 경계..국민연금 신중해야
정승일 대표는 삼성물산을 흔들면 삼성그룹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돼도 엘리엇은 여전히 합병된 삼성물산의 주주다. 삼성물산이 삼성그룹 전체 지주회사가 된다.
엘리엇은 지난해부터 한국에 진출해 사전조사를 할 만큼 치밀하게 소송을 준비했다. 이런 이유로 정승일 박사를 비롯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엘리엇이 단순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 이상 계획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정 대표는 “아마 앞으로 이건희-이재용 일가와 삼성그룹을 상대로 수 년간 소송을 전개할 것”이라며 “결국 삼성그룹을 압박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정승일 대표는 헤지펀드 엘리엇의 목적을 경계한다. 정 대표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문제삼은 것은 일종의 명분일 뿐”이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헤지펀드 엘리엇과 같은 투기자본의 속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엘리엇은 이미 아르헨티나 국가부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 1980년대 페루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투자비용의 400%에 가까운 시세차익을 챙겼다.
정 대표는 이 때문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그는 단기 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의 요구를 들어줄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합병이 되면 주식가치가 높아질 것인데 국민연금이 합병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어차피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합병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차라리 (합병을) 나중으로 기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해체가 개혁 능사 아냐..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제해야
그렇다고 정 대표가 재벌에 대해 관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진보진영의 재벌해체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단순히 순환출자 고리 해체나 주주자본주의 개혁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 정 대표의 입장이다.
그는 “일부 진보진영에서 재벌의 문어발 확장을 경계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자고 한다”며 “하지만 그 이후의 대안이 무엇인지 모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진영은 재벌의 사업 확장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
대신 정 대표는 재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지원하되 적절한 사회적 통제가 필요하다고 정 대표는 설명한다. 즉 재벌의 동네상권 침범은 막아야 하지만 대기업의 투자 자체를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인식이다. 대기업이 공정거래를 하고 일자리 창출이나 인프라(사회기반시설) 건설에 기여할 수 있도록 대기업을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주장이다.
정 대표는 “사회적 대타협은 과거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비그포르스 노선을 따른 것”이라며 “일부 자유주의 경제학자 뿐만 아니라 진보정당도 이런 국가비전을 가진 적이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다.
정 대표는 늘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노동운동 명망가나 일부 386과 달리 정치에 투신하지도 않았다. 학계에서도 비주류 소속이다. 그는 79학번으로 대학생 시절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쳤다. 이후 그는 1989년 냉전체제가 해체되자 동구권 몰락의 원인과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유학파가 주류인 대한민국 학계와 달리 그는 유럽 유학파다. 즉 대한민국 주류 카르텔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그의 이력 탓인지 정 대표는 학계에서 실명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학연 지연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