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이 책] 흑백사진 속 행복했던 시절
[추천! 이 책] 흑백사진 속 행복했던 시절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6.01.08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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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알랭 레몽 지음 | 김화영 옮김 | 비채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그 나직하고, 그러면서도 좀 다급한 목소리가 나를 따라다녔다. 하마터면 수십 년 동안 참아온 울음을 퍽, 하고 터트릴 뻔했다.” (p.152)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교수,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인 알랭 레몽의 성장소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비채. 2015)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의 작품 해설이다. 이 책은 그가 번역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저없이 손에 들게 되는 책이다. 그는 프랑스 문학 번역의 대가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표제작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은 오래 전에 떠나온 고향집과 가족에 관한 기억들을 쓴 자전소설이다. 마치 우리 자신의 흑백사진을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어느덧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나이 쉰세 살이 된 저자.

“내게는 혼자 남몰래 들여다보는, 혼자 남몰래밖에는 보지 못하는 이 사진들이 있다. 트랑에서의 행복이 찍힌 이 사진들. 해가 환하게 비치는 어느 날 부엌이나 집 앞에서, 혹은 빌카르티에 연못가에서, 숲 속에서 찍은. 모르탱, 전쟁의 모험, 그리고 연합군 상륙에서부터 온갖 놀이와 꿈과 의식과 비밀들로 가득한 그 낙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로 한 덩어리가 된 우리 어린아이들.

개를 쓰다듬으면서 햇볕을 쬐는 어머니. 그리고 돌아가시기 불과 얼마 전 검은 양복을 입고 가족들과는 약간 떨어져 서 있는 아버지의 이 사진. 미소를 짓고 있다. (중략) 내가 사랑하지 못했던 우리 아버지. 최근에 나는 그의 꿈을 자주 꾼다.” (p.147)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트랑’에서의 어린 시절은 모두 거짓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는 사실, 그것은 그에게 ‘사랑의 죽음이었다.’ 그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싶었지만 끝내 이방인일 뿐이었다. 십남매의 버팀목이 되어준 강인했던 어머니와 유년의 기억, 그 시절에 얽혀있는 집에 대한 각별한 추억이 아련하다.

"트랑에 있는 우리 집의 새 주인들도 왔다. 그곳에 와서 영구히 자리 잡은 두 사람의 영국인이었다. 그들은 친절하게도 내가 원한다면 그 집을 다시 와서 보라고 했다. 아니다. 나는 그 집을, 우리 집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내 속이 까맣게 타버릴 것이다. 너무 많은 추억들 때문에. 너무 많은 행복, 너무 많은 죽음들 때문에. 그렇지만 나는 트랑에 다시 가보았다. 나는 맞은편 포도에 서서 빨리, 슬그머니 도둑처럼 그 집을 바라보았다. 머물지 말고 얼른, 얼른, 보고 가야지.” (p.301)

죽음과 이별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 사실이 마음을 울린다. 소설은 얇고 술술 읽히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아껴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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