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재일작가이자 동경경제대 교수 서경식이 쓴 에세이 <시의 힘>(현암사.2015)이 2015년 작가들이 사랑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로 고정 독자층을 만든 이래 이름만으로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 몇 안 되는 문필가다. 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번 에세이는 한마디로 시를 통해 문학이 필요한 까닭을 역설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인간이 시를 쓰고 읽고 저항하는 이유는 ‘문학’이라는 형태로 지난 시대의 고투가 기록돼서다. 이는 과거와 교감할 수 있는 도구이자 힘이다. 저자 또한 시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110쪽~111쪽 중에서
이어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 강조한다. 대다수 국민이 고통 받는 지금 시인들이 해야 할 일은 현실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저자는 핏빛 잔치가 펼쳐졌던 70~80년대가 배출한 김지하, 박노해, 최영미, 정희성 시를 둘러보며 시에 담긴 시대 변천사를 보여준다. 특히 정희성의 시 ‘세상이 달라졌다’는 마치 지금 시대를 담고 있는 듯해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152쪽
책은 이처럼 시대를 담는 ‘문학’이야말로 대중의 ‘무기’이자 ‘힘’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점이 우리 문학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서경식 교수의 잔잔하고 단단한 필력을 다시 확인할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