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역시 다르다.”
작가 이어령이 30여 년 간직했다는 ‘보자기 통찰'이 담긴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마로니에북스.2015)을 보면 절로 나올 감탄이다. 아속공상(雅俗共嘗)의 경지라 말하면 알맞다. 고상한 선비들이나 일반인들이 함께 감상하고 즐긴다는 뜻으로 저자 이어령의 글이 그렇다.
제목은 물건을 싸는 ‘보자기’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싸다와 넣다’에서 비롯된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통해 바라보는 문명사적 질문이다. 우리 문화 보자기는 물체의 모양이나 크기와 상관없이 쌀 수 있다. 이에 반해 틀이 정해져 있는 가방은 물체를 가방에 맞춰 넣어야 한다.
한복과 양복의 경우도 같다. 한복은 사람의 몸을 싸지만, 모양이 잡혀 있는 양복은 옷에 사람을 넣어야 한다. 이처럼 본래의 우리 문화는 융통성과 포용성으로 상징된다. 이것이 책이 말하는 제도와 틀을 중요시하는 서양문화와의 차이다.
이런 태생적 특성은 관료주의(bureaucracy)와 이에 대조적인 모형인 애드호크러시(adhocracy) 즉, 가변조직으로 이어진다. 한국사회도 급변하는 시대에 발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풍’의 메시지도 새롭다. 구미인(歐美人)이 개인의 자유를 위해 벽을 두껍게 만들고 세분화했을 때 동아시아 삼국의 사람들은 벽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가볍고 얇게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병풍이다. 벽이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유롭게 벽을 제어해 불변부동(不變不動)의 개념을 가변가동(可變可動)으로 바꾼 것이다.
병풍은 바람을 막는 벽이라는 일차원적인 의미로부터 좀 더 넓고 깊게 확장된다. 절묘한 비교, 놀라운 분석력은 책의 묘미다. ‘보자기’라는 상징적 매개체는 이어령의 사유와 맞물려 맛있는 인문학 밥상으로 재탄생한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