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급이 다른 ‘교양없는 이야기’가 나왔다. 28가지 똥 이야기로 범벅된 <교양없는 이야기>(프리텍.2016)다. 대체 똥 이야기로 어떻게 28개 목차를 채울 수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놀랍게도 각 장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롭다. 자, 다음 삽화를 보자. 뭘까.
[5쪽 삽화]
센스 있는 독자라면 ‘설마...똥?’이란 생각이 들었을 터다. 맞다, 이것은 똥이다. 마치 다 타버린 모기향 같은 모양은, 심해 깊은 곳에서 발견된 ‘반삭 동물’이라는 무척추 동물의 배설물이다. 반삭 동물은 조금 큰 지렁이 모양으로 소용돌이 모양 외에도 선과 도형 같은 끈 모양의 배설물을 남긴다. 신기한 이야기는 또 있다.
애벌레 일종인 남생이잎벌레 유충의 창조적인 방어술이다. 이 유충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파이프 모양의 항문을 통해 똥을 배설한 뒤 부지런히 쌓아 말리길 반복해 산호초 같은 모양의 똥을 만든다. 이를 분관이라 하는데 적이 나타나면 꼬리 쪽을 들어 똥을 마치 우산처럼 펼쳐 자신을 보호한다. 똥으로 분장해 적을 속이는 기발한 방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똥으로 만든 분관은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도 된다는 점이다. 이 분관을 방망이처럼 휘둘러 외부의 공격에 대응한다. 이 유충과 친척뻘인 다른 애벌레는 이 분관을 화학병기로도 사용한다. 똥에 사포닌이나 알칼로이드, 카이톨 같은 유도체가 함유돼 살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 삽화가 바로 남생이잎벌레 유충의 모습이다.
[삽화 23쪽]
이 같은 사실주의 삽화는 책을 보는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생물학적 내용을 삽화로 제시해, 보는 내내 흥미를 유발하고 구체적인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내용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책은 다이아몬드만큼 귀한 똥부터 전쟁을 일으키는 똥, 새끼를 지키는 어미의 똥 등 생물의 다양한 똥 세계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소개한다. ‘똥’이라는 소재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담, 생생한 삽화가 조화롭게 어울려 읽는 내내 유쾌하고 즐겁다. 생물과 관련된 이야기와 지식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