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신간 <오래 봐야 보이는 것들>(인디북. 2016)의 저자 최성현이 그랬다.
인문학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스물 여덟살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안정된 삶을 버리고 산으로 향했다.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책은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었다. 일본의 농부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자연농법’의 효시와 같은 책이다. 그는 문득 자신이 딛고 선 현실이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그때 선택한 곳은 산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전화도 없고 이웃도 없는 깊은 산속에서 생활했다. 척박한 땅에 씨를 뿌리고, 숲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자연농을 추구하게 된 이유는, 인류가 먹거리를 생산하기 위해 지구 환경을 해친다면 결국에는 인류의 미래도 없을 것을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그동안 인류는 지구에 상처를 내고(경운), 땅을 오염시키며(화학 비료), 생물종의 다양성을 말살하는(제초) 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환경을 훼손해 왔던 것.
자연농이란 자연이 식물을 키우는 방식 그대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땅을 갈지 않고(무경운), 화학 비료를 쓰지 않으며(무투입), 김매기를 하지 않는(무제초) 농법이다.
“자연농법에서는 풀과 싸우지 않는 길을 간다. 함께 사는 길을 찾는다. 그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내가 쓰는 방법은 풀 베어 주기다. 뽑지 않고 벤다. 베어서 그 자리에 펴 놓는다. 또 한꺼번에 베지 않고, 한 줄씩 건너 뛰어 벤다. (중략)
논에는 풀도 살지만 벌레도 산다. 풀은 벌레의 밥이자 집이다. 그래서 한꺼번에 다 없애면 안 된다. 그래야 풀과 벌레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다.” (156쪽~157쪽)
물론 자연농을 실천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자연농을 시작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땅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화학 비료에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끈질기게 자신의 길을 갔다. 드디어 땅이 기력을 회복했다. 이제 그의 논에서는 온갖 동물이 자라고, 밭에서는 다양한 식물들이 공존한다. 기력을 회복한 것은 땅만이 아니었다. 그의 논과 밭에서 땀을 흘린 사람들도 삶의 에너지를 되찾았다. 농부가 된지 30년이 다 된 지금 그의 논과 밭에는 수많은 생명이 찾아오고 사람이 찾아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작은 풀잎이나 새소리, 태풍과 같은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과 책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누구나 우주가 피운 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에 태어난 모든 것이 우주가 수십억 년의 전 생애를 바쳐 가꾼 꽃이다.”
그는 논과 밭을 일구며 삶의 방향도 찾았다. 그는 고향인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신의 논밭을 교재로 해 자연농의 철학과 기술을 가르치는 ‘지구학교’도 열었다. 그곳에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한다. 이 책 또한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