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세상이 한뼘 더 따뜻해짐을 느꼈다면 누군가로부터 받은 배려 때문일 것이다. 어려움에 처했던 열 두살 소녀도 그랬다. 한 중고컴퓨터 부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6학년 딸에게 선물할 중고 컴퓨터 한 대 구해주세요.”
중고컴퓨터 가게에 걸려온 전화였다. 수화기의 주인공은 직장 때문에 지방에 따로 살고 한 아이의 엄마였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엄마가 딸을 위해 컴퓨터를 사주려는 것이다. 새 컴퓨터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돈이 없어 중고 컴퓨터 가게에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때마침 적당한 중고컴퓨터가 있어서 그 집으로 배달을 나갔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할머니가 손녀를 키우고 있었다. 컴퓨터를 설치하고 22만원을 받았다. 아이는 컴퓨터를 보며 입이 함박만해졌다. 덩달아 컴퓨터 아저씨의 마음도 뿌듯했다.
아이는 학원 갈 시간이 되었다. 가는 방향이 같아 학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저씨 옆자리에 앉은 아이. 몇 분이 지났을까.
"아저씨,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이는 중간에 내렸다. 차를 세우자 문을 열고 건물로 뛰어 들어 갔다. 컴퓨터 아저씨가 언뜻 옆자리를 보니 시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생리가 시작된 모양이구나.'
컴퓨터 아저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내는 생리대와 속옷과 바지를 준비해서 왔다. 그리고 아이가 들어간 건물 화장실로 갔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살펴보니니 문이 계속 닫혀 있는 곳이 있었다.
“똑똑”
노크를 한 다음 아이에게 준비해 온 물품을 건네주었다. 잠시 후, 아이는 편안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 흔한 휴대폰도 없던 아이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나타난 처음 보는 아줌마가 천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아내는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더니 컴퓨터 대금 중 10만원을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컴퓨터 아저씨는 10만원을 잘못 받았다며 할머니에게 환불해드렸다. 사실은 큰 손해를 감수한 일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사를 하는 것인데 오히려 목돈이 나가다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 저녁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고맙습니다. 아이한테 이야기 들었습니다.”
아이 엄마의 말에는 고맙고 미안한 눈물이 묻어 있었다.
금전적으로 시간적으로 큰 손해를 본 하루였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날이었다.
배려는 교과서에서 배운다고 되는게 아니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행동으로 실천한 컴퓨터부부의 이야기가 더 가슴 찡하게 전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