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발표 공포증 극복한 강원국 '외우고, 시도하라'
[삶의 향기] 발표 공포증 극복한 강원국 '외우고, 시도하라'
  • 이수진 기자
  • 승인 2016.08.18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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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악 평생학습센터에서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진=화이트페이퍼)

[화이트페이퍼=이수진 기자] 유명 강사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말 잘하는 모습을 보면 한 번쯤 부러운 적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말을 잘 했을까.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 강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두 대통령을 8년 간 모시면서 연설문을 쓰던 그가 말도 잘하게 된 비법은 무엇일까.

그는 말을 못하는 정도가 병에 가까웠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려면 심장이 쿵쿵거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발표가 공포였다. 물론 친구들이나 토론모임 같은 편안한 자리에서는 말을 잘해서 인간관계에는 문제없었다.

그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발표로 고민이 깊었다. 졸업논문을 교수님과 친구들 앞에서 직접 발표 해야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표 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양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취하니 겁대가리가 없어졌다. 달달 외운 논문을 일사천리로 읊었다. 무사히 마쳤다. 사정을 모르는 지도 교수가 한 마디 했다.

“강원국, 어젯밤 술을 얼마나 퍼마셨길래 아직도 술이 안 깼냐?”

그가 대우그룹에 다닐 때였다. 과장 승진 시험에 합격했다. 교육만 받으면 차장에서 과장이었다.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3분 스피치'를 보고 교육을 계속 미루었다. 발표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얼마 후, 회사가 문을 닫았다.

문제는 훗날 재취업할 때였다. 차장과 과장의 경력 차이가 무려 4년이었던 것. 고작 3분 스피치를 피한 댓가로 연봉에서 많은 손해를 본 셈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는 3년 동안 오직 글만 썼다. 말을 안해도 되니 정말 다행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토론을 즐겨하는 분이었다. 노무현 정부 취임 첫해, 5월 어느 날이었다. 외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8.15 경축사를 작성하기 위해 토론자료를 준비해오세요.”

설렁탕을 먹다말고 숟가락을 탁 놓았다.

‘이젠, 청와대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

발표를 하느니 차라리 사표를 내고 싶었다.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지만 발표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람이 밑바닥에 내려가면 용기가 생기는 법. 망신을 당하더라도 시도해보았다. 먼저 발표 내용을 완벽히 외웠다. 이번에도 몰래 술을 마시고 회의장에 들어갔다. 그에게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그리고 장관들의 시선이 쏠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손발이 떨렸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술기운을 빌려 외운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했다. 모두 숙연하게 경청했다. 발표를 잘해서가 아니라 발표 모습이 애처러웠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질문도 피드백도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끝났다.

한 번이 무섭지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발표가 조금씩 재미있어졌다. 그 뒤로 인생이 바뀌었다. 지금은 글과 말로 먹고 사는 강사다. 종종 신문에도 나오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그는 발표 때문에 고민인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스피치 노하우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첫 번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를 해라. 두 번째, 발표 내용을 완벽하게 외워라. 세 번째 말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아라. 우리 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누구나 말을 잘 할 수 있다.”

그는 강의를 많이 하지만 여전히 강심장은 아니다. 가끔은 약간의 떨림과 긴장상태를 즐긴다. 마치 청중이 바다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던지고 물에 뜨는 심정으로 편하게 강의한다. 그러면 청중도 편안하게 이야기를 들어 준다.

"말 잘하면 절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은 말 잘하면 강사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다. 강사가 꿈이지만 발표 공포증으로 좌절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자신감을 주는 경험담이다.

이 내용은 관악 평생학습센터에서 열린 '강원국의 글쓰기'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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