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역시나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한겨레출판사. 2016)은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준다.
제목에서 말하는 ‘시인’이란 2010년에 발표한 그녀의 전작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도 등장했던 ‘자갈치 시인’을 말한다. 그의 본명은 박남준이다. 이번 책은 지리산에 살고 있는 박시인이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소박하지만 따듯하고 구수한 요리에 얽힌 이야기다.
전주의 '새벽강'이라는 술집에서 굴전을 먹을 때의 일이다. 버들치 시인이 전주에 가면 꼭 보곤한다는 한 건축가가 함께한 자리. 그 건축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는 십여 년 전 미국의 금융위기 때 쫄딱 망해서 모든 것을 다 잃었다. 그때 채권자들을 피해서 지리산 버들치 시인 집으로 갔다. 그런데 시인은 ‘생명 평화 순례’를 하느라 집에 없었다. 밤 11시쯤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밤에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달려왔다.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자고 일어난 아침.
시인은 안보이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시인은 ‘어디 어디 돌을 들어봐라, 거기 뭐가 있을 건데 그러면 다 안다’고 말했다. 건축가가 그 돌을 들어보니 편지봉투 속에 편지와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편지에는 ‘내가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 하면서 ‘힘들더라도 절대 굶지 말고 이걸로 짜장면이라도 사 먹고 다녀’라고 쓰여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돈은 시인의 전 재산이었다.
“듣고 있던 버들치 시인이 끼어들었다.
“아니여, 전 재산 아녀. 내가 4만 원은 떼었어. 전기세가 밀려 있어서.”
건축가는 버들치를 보며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이 숙맥이 내가 100만 원도 없는 줄 안 거야. 아무리 망해도 그건 있었는데.”
건축가가 다시 말했다.
“내가 그 편지 간직하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그랬어요. 아빠는 그리 잘 살지는 못했지만 이런 친구는 있다, 그랬죠. 물려줄 거예요, 그 편지.”" (P.72)
천문학적인 숫자의 나랏돈을 자기 통장에 넣어두고 호의호식하던 사람들. 그들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남을까.
버들치 시인의 친구들은 말한다. 언제든 “버들치가 오라면 와, (가던 길도) 유턴해서 바로 와. 여기도 권력이야. 임기 5년 짜리에 비할 수 없는 권력이지. 암, 권력이고말고.” 글을 읽는 이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