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팅뉴스] 달팽이를 읽는 즐거움
[화이팅뉴스] 달팽이를 읽는 즐거움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7.01.25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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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내어 읽는 즐거움> 정여울 지음 | 홍익출판사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많은 글들 중에서 특히 시는 소리내어 읽어보면 그 이해도와 감동이 다르다. 작가 정여울은 <소리내어 읽는 즐거움>(홍익출판사. 2016)에서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것이 ‘좋은 글 소리내어 읽기’라며 아래의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젖은 땅을 엉금엉금 느리게 걸어가는 달팽이의 애잔한 모양새가 떠오를 것이라고. 이어 우리에게는 달팽이처럼 소리치지도 엄살 부리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고통을 참는 약한 것들의 서글픔을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전한다.

“달팽이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선다. 험한 세상 어찌 살까 싶어서이다. 개미의 억센 턱도 없고 벌의 무서운 독침도 없다. 그렇다고 메뚜기나 방아깨비처럼 힘센 다리를 가진 것도 아니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시늉만 해도 바스라질 것 같은 투명한 껍데기. 속까지 비치는 실핏줄이 소녀의 목처럼 애처롭다.

달팽이는 뼈도 없다. 뼈도 없으니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 하물며 무슨 고집이 있으며 무슨 주장 같은 것이 있으랴. 그대로 ‘무골호인’이다. 여리디 여린 살 대신에 굳게 쥔 주먹을 기대해 보지만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다.

그렇다고 감정마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감하기로는 미모사보다 더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몸을 움츠리고 이마를 스치는 바람에도 고개를 숙인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예민해서요 수줍어서이다.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깝다.

누구를 찾고 있는 것일까?

달팽이는 늘 긴 목을 치켜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그의 이웃은 아무 데도 없다. 소라, 고동, 우렁 그리고 다슬기 같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의 이웃이 아니다. 아득히 먼 물나라의 시민들이다.

모든 생물이 다 그러하듯 달팽이의 고향도 바다였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먼 조상들 중 호기심이 많은 한 마리가 어느 날 처음 뭍으로 올라왔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물달팽이가 육지 달팽이로 바뀌는 기구한 역사가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육지에 사는 달팽이의 목과 눈은 물달팽이의 그것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슬픔도 내림이라, 수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조상들의 슬픔으로부터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실향민의 후예. 달팽이는 늘 외로움을 탄다. - 손광성, <달팽이> 중에서” (p.51~p.52)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착하고 순한 달팽이. 달팽이처럼 자신의 등짝으로 옮길 수 있는 크기의 집을 우리가 원하고 산다면 얼마나 간결하고 소박하며 평온한 삶일까. 강하고 크고 많은 것을 원하는 우리는 달팽이를 통해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다행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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