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작전' 방불케 한 WP 기자의 13시간 방북기
'007작전' 방불케 한 WP 기자의 13시간 방북기
  • 이현미 기자
  • 승인 2018.05.11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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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오전(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의 귀국을 축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 토니 김, 트럼프, 김동철, 김학송 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오전(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의 귀국을 축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 토니 김, 트럼프, 김동철, 김학송 씨이다.

미국 국무부는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위한 정교한 계획과 절차를 원한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9일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데려오기 위해 13시간 동안 평양을 방문했을 때는 거의 그렇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WP) 캐럴 모렐로 기자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국무부 출입을 하고 있는 모렐로 기자는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한 방북기를 통해 워싱턴에서 출발할 때부터 3명의 미국인을 데리고 돌아올 때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전했다.

 우선 출발할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기내에서 미국인 3명을 데려올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런 보장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평양에서 만날 북한 당국자들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특히 모렐로 기자와 AP통신 기자는 방북 시간이나 날짜에 대해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으며, 방북시 얼마나 많은 것을 취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약속된 게 없었다고 한다.

 결국 폼페이오 장관 등 일행은 숙소인 고려호텔과 순안공항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아주 조금 본 것 외에는 특별한 취재를 할 수 없었으며, 호텔 로비를 거의 나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모렐로 기자는 국무부의 영광을 상기시키려고 노력하는 폼페이오 장관으로 인해 김정은 정권을 다루는 외교의 현장을 아주 조금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두번째 초청은 비밀리에 난데없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지난 4일 오후 북한 방문을 단지 한번만 방문하기 위해 특별 허가 승인 도장이 찍힌 1페이지짜리 새로운 여권을 발급받으라는 전화를 미 당국자로부터 받았다. 미 국무부는 미국인들의 북한 여행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국자로부터 출발 통보를 받으면 즉시 떠날 수 있도록 작은 가방을 준비하라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물론 방북 예정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사전에 말해서는 안된다는 명령도 받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모렐로 기자는 "내가 생각하는 거기로 우리가 가는 것이냐"고 복수의 미 관리들에게 비공개석상에서 물었다고 했다. 그러자 관리들은 침묵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3일 뒤 모렐로 기자는 북한으로 출발하기 4시간 전에 방북 통보를 받았고, 항공기 탑승을 위해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이동했다. 폼페이오 장관 일행이 탑승한 비행기는 알래스카와 일본에서 급유를 하면 거의 24시간 동안 비행이 가능한 것이었다.

 미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무부 관리들도 탑승했으며, 기자들은 그들로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을 준비를 위한 임무 수행이 두번째 방북 목적이라고 들었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을 데려올 것이라는 힌트는 탑승객 중에 내과 의사와 정신과 의사, 새로운 여권 발급 권한이 있는 영사 서비스 담당 국무부 차관이 포함된 것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모렐로 기자와 매튜 리 AP통신 기자가 좌석에 앉자,  그들이 있는 비행기 뒷쪽으로 와서 북미정상회담 계획 대한 일반적인 내용들을 말했다. 하지만 억류 미국인 3병 석방에 관해 물었을 때 폼페이오 장관의 대답은 모호했다. 그는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기 전 그들을 석방하면 "훌륭한 제스처"가 될 것이라면서, 다시 그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내에서는 와이파이 접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급유를 위해 일본에 착륙하기 전까지 기사를 전혀 쓸 수 없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트위터를 통해 알린 뒤 방북 관련 기사를 송고했고, 3일간의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샤워를 했다고 전했다.

 모렐로 기자는 폼페이오 장관 일행의 비행기는 현지시간으로 10일 오전 8시 전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텅빈 평양 공항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3명의 북한 당국자들과 붉은 카펫 위에서 악수를 나눈 뒤 폼페이오 장관은 메르세데스 리무진에 올랐고, 다른 일행들은 메르세데스 버스에 탑승했다.

 차량들은 곧 평양시내 중심가를 향해 4차선 도로를 약 15마일(약 24km)을 주행했다. 그 과정에서 넓게 펼쳐진 곳과 마을 지나쳤고 정장을 입은 남성과 비즈니스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 그리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좁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봤다. 누구도 자동차 행렬에 당황하는 이들은 없었고, 그것을 응시하는 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다음 폼페이오 장관 일행은 마루와 벽이 대리석인데다 호화로운 시설이 갖춰진 고려호텔에 도착했고, 폼페이오 장관과 일행들은 38층으로 안내됐다. 두 기자는 로비에 자리를 잡고 이후 10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서울=뉴시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과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 3명에 대한 석방을 논의했으며, 억류된 미국인들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미국으로 귀국했다. 2018.05.10. (출처=노동신문)  photo@newsis.com

하지만 그곳에서도 철저하게 고립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휴대전화는 작동하지 않았으며, 와이파이도 연결되지 않았다. 경호원이 없이는 호텔을 떠날 수 없었다. 결국 두 기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호텔 내부를 둘러보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작은 식료 잡화점과 공예품 가게, 반미 선전 엽서를 팔고 있는 선물가게가 있었다. 그 엽서에는 박살난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선물가게 테이블에는 여러가지 언어로 번역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쓴 책들이 놓여 있기도 했다.

 두 기자는 또 시간을 죽이기 위해 호텔 주변을 돌아다녔다. 무슨 일인지 동일한 페이스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보행자들을 보았고, 보행자들과 자동차들에게 지시를 하거나 노동당 소속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향해 경례하는 여성교통경찰을 연구하기도 했다. 당시는 러시아워 시간이었던 만큼 자동차 수를 세기도 했는데, 30초 동안 한번에 4대가 지나갔다.

 미 국무부 관리가 정기적으로 기자들에게 위층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내려왔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 관리를 만났고, 오찬을 하고 있었다. 서로 건배사를 주고 받는 것을 듣기 위해 기자들이 호텔 2층 오찬장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오찬에는 철갑상어, 거위, 랍스터, 스테이크, 잣죽, 콘 차우더, 바나나 아이스크림이 나왔고, 너무 많은 음식들로 인해 폼페이오 장관의 참모들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한다.

 오찬이 끝난 뒤 국무부 한 관리는 기자들에게 폼페이오 장관이 그날 오후 4시에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들은 동행할 수 없었고, 폼페이오 장관은 오후 5시30분에 호텔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때까지 로비에서 뻗치기를 하면서 기다리던 두 기자는 기쁜 소식을 기대하고 있는지 말해줄 것을 폼페이오 장관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행운을 빌었다(crossed his fingers)고 한다.

 그리고 15분 뒤 국무부 관리가 석방 소식을 갖고 기자들에게 돌아왔다. 복수의 북한 당국자들이 폼페이오 장관을 찾아와서 "매우 어려운 결정"이라면서 3명의 미국인 억류자들의 "사면"을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억류자들은 오후 7시에 석방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로비에서 의사와 영사업무담당자들을 다른 호텔로 데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이후 기자들도 밴에 탑승하도록 조치됐고, 이들은 공항에서 억류자들을 기다렸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은 억류자들에게 말을 하거나 짧은 거리에서 그들을 보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경고를 받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단호했다고 한다.

 모렐로 기자는 밤 8시25분 석방된 억류자들을 태운 차량이 도착하는 것을 비행기 창문을 통해 봤으며, 밤의 어둠 속에서 여러 명 남성의 실루엣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이 보였다고 전했다.

 기자들의 좌석과 석방된 억류자들 좌석은 두 개의 커튼에 의해 분리돼 있었고, 화장실도 기자들에게는 오른쪽에 있는 것만 사용하도록 해 억류자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고 한다.

 억류자들이 풀려나서 공식적으로 미국에 넘겨진지 불과 1시간만인 오후 8시40분 비행기는 이륙했다. 한반도 상공으로부터 벗어나 일본에 착륙하기 30분 전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들에게 와서 정상회담 날짜와 장소가 결정됐다고 말했다. 그런 다음 비행기는 일본 요코타 공군기지에 착륙했으며, 당시는 폼페이오 장관이 포로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후였다.

 억류자들은 그 곳에서 다른 비행기로 옮겨졌으며, 알래스카에서 급유를 할 때까지 2대의 서로 다른 비행기에 머물렀다고 한다. 두 비행기는 나란이 비행했고, 기자들이 도착하기 20분 전 억류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먼저 도착했다.

 두 기자는 비행기에서 내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이 억류자들을 환영하는 모습을 수백 피트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봤다. 활주로에 있는 2개의 크레인과 커다란 미국 국기 외에 어떤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모렐로 기자는 조만간 억류자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고 마침내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게 무엇인지 보게 될 것이라고 전하면서 13시간 방북기를 마쳤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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