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행 3
영국 기행 3
  • 유양업 (전선교사 시인 수필가 시조시인)
  • 승인 2019.04.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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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하면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교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이 도시에 오게 된 것도 옥스퍼드 대학교를 호흡하기 위해서였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기원과 시스템을 알기는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옥스퍼드는 런던에서 서북쪽으로 약 96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자동차로 1시간 20분 걸린다.

대학교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초엽(1167), 파리에서 온 학생들의 이주의 결과였다. 처음에는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 교양학부가 개설 되었다. 1249년 유니버시티 칼리지가 최초로 세워졌고, 첫 여자대학인 Lady Margaret Hall은 1878년에 창립 되었다.

영국의 가장 오래된 옥스퍼드 대학교는 38개의 대학들과 종교단체에 의해 운영된 6개의 영구 사설 학당(Permanent Private Halls)과 합쳐 44개의 연합체(federation)이다. 옥스퍼드 대학교라는 이름의 캠퍼스는 찾을 수 없다. 단과 대학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에 다니는 것은 곧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는 것이다. 올 소울스(All Souls) 칼리지에 다니는 것도 곧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칼리지가 아닌 6개의 영구 사설 학당도 옥스퍼드 대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붉은 벽돌담을 두르고 육중한 큰 대문 주위에 옥스퍼드 대학교 간판이 띄엄띄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크 목사님은 일어서더니 둥그런 진청색의 마크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왕관이 4개가 그려진 중심에 책이 펴 있는 곳에 글자가 쓰여 있었다.옥스퍼드 대학교 문장인데 라틴어였다.
  ‘Dominus Illuminatio Mea’
  영어로는 ‘The Lord is my Light’
  한국어로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시 27:1)’이었다. 성경 말씀을 중심하여 세워진 학교로구나 새로이 알고 감회가 깊었다.
  마크 목사님은 개인일로 외출을 한다며 우리에게 물었다.
  “집에서 잠시 쉬시겠어요.”
  남편은 손을 볼에 대고 생각한 표정이더니 말을 했다.
  “가시는 길에 어제 지나쳤던 옥스퍼드 신학대학에 우리를 내려주면 좋겠어요.”
  “아, 그렇게 하지요.”

남편은 내심 신학교 교수를 만나 얘기라도 나누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신학대학 건물은 초창기에 지어진 건물로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박물관과 같은 건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 서 있는 설립자의 큰 동상을 지나 입장료를 주고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아름다운 홀 안은 그때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만 진열해 있고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근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러 책들을 둘러보았다. 남편은 Mark Chapman 저 <ANGLICANISM(성공회)> 이라는 책을 샀는데 이 저서는 매우 간결한 소개서 (A Very Shot Introduction)인 책이었다. 난 기념으로 냉장고에 붙이려고 크라이스트 대성당이 그려 있는 마그네틱을 샀다.
  그 후 집에서 남편은 영국 교회사에 대한 관심을 말했을 때 마크 목사님은 자기 서가에서 J.R.H. MOORMAN 저 <A HISTORY OF THE CHURCH IN ENGLAND영국교회사>책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이 책을 나도 구입하고 싶네요.”
  “아, 그래요, 그러면 이 책을 가져도 됩니다. 다음에 내가 사도록 하지요.”
그래서 남편은 책값 11파운드를 건네주었다. 책을 손에 든 남편은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시력도 여의치 않는데 학문적인 관심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다음 날 마크 목사님은 아침 식사시간에 토스트를 집으며 말했다.
  “오늘은 시내에 나가 C.S. Lewis(1898-1963) 유적지를 방문할까요?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가 보고 싶은 곳인데, 좋습니다.”
  목사님은 오랜지 쥬스가 든 컵을 식탁 위에 놓고 일어서서 C.S. Lewis 저 <나니아 연대기> 케이스에 든 일곱 권의 책을 가지고 와서 그분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니아 연대기>는 fantasy(환상) 소설의 바이블이라 일컫지요. 전 세계 29개 언어로 번역되어 8천5백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였지요.
  “목사님, C. S. 루이스를 말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꼽히는 기독교회 변증가이자 시인, 작가, 비평가, 영문학자이지요.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했지요. 1925-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드린 대학에서 개별 지도 교수(fellow)를 했고, 1954년 켐브리지 대학교에 교수(professor)로 취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지요.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종교적 도덕적 문제들에 대해 널리 글을 썼고 방송도 했습니다.”

목사님은 커피잔에 남은 차를 비우고 말을 계속 이었다.  “루이스는 미국의 여류 작가 Joy Davidman (1915-1960)을 50세에 만나 사랑을 나눴는데, 사랑한 그녀는 암으로 병원에서 투병 중인데도 병실에서 결혼식을 올렸대요. 그러나 얼마 살지 못하고 안타깝게 죽음을 당했지요. 그들의 사랑은 널리 알려져 유명한 영화 <Shadowlands> (1993)가 제작 되었어요.
  각 방면의 수다한 저서들 중에 <고통의 문제>와 <마음을 헤아리는 슬픔>이 있는데, 전자의 책에서는 남의 고통의 문제를 종교적으로 잘 설명해 주었으나, 후자의 책은 결혼 생활도 제대로 못하고 사랑한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한 내용이었지요.”   

우리는 이런 사전 지식을 알고서 마크 목사님을 따라 Lewis가 살았던 유적지로 향했다. 그가 생전에 다녔던 교회 앞에서 내렸다. 화창한 봄날씨는 꽃바람 싣고 따스한 햇볕에 향기를 물씬 풍겨 주었다. 잔디가 좌우로 깔려있는 이 좁다란 길을 통해 교회를 다녔겠구나 싶었다. 조그만 교회 안으로 들어갈 때 밝은 햇살은 환하게 비춰 주었다. 루이스가 늘 여기에 앉아서 예배드렸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루이스를 떠올리며 그 자리에 앉아 정면 강단 쪽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평안이 왔다. 벽에는 그의 작품과 초상화도 걸려 있었다.
교회 앞뜰은 평토작으로 된 공동묘지로 정원이었으며 정원사 5명이 손질하고 있었다. 수많은 교인들의 묘가 수선화 꽃으로 둘러있었고, 루이스의 묘는 교회 정문 바로 앞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으며, 그의 생애가 간결하게 쓰여 있었다, 무덤 주위에는 노란 수선화와 아름다운 여러 꽃들로 감싸있었다. 루이스가 살았던 가옥으로 갔다. 누가 살고 있었는데 약속을 하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 갈 수 없다 하여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집 가까이에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넓은 호숫가에 벤치들도 놓여 있고 새들도 날아 다녔다. 이런 절경의 환경에서 좋은 작품들이 나왔겠다 싶었다.

점심때가 되었다. 목사님은 루이스가 자주 다녔다는 식당을 말했다. 우리는 호기심에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별로 크지 않는 식당이었다. 5~6명이 앉을 수 있는 두툼한 나무로 칸막이가 모두 되어 있었고 나무로 된 벽에는 조각을 새겨 꽃모양의 문양들이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특별히 눈에 띈 것은 넓은 벽에 세계 지도가 붙어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온 손님들은 그 지도에 자기 나라가 있는 곳에 자기 나라 지폐를 꽂아 놓았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이리저리 뒤적이며 Korea를 찾아 보았으나 지페들이 조그만 산을 이루고 있어서 도저히 찾지 못하여 포기했다. 손님들이 무척 많았다. 우리는 망고 쥬스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양도 많고 맛도 있었다. 기어코 목사님이 식사 값을 지불했다.

저녁에는 옥스퍼드에서 제일 오래되고 제일 아름답다는 Christ Church 대성당으로 걸어서 갔다.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많은 학생들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저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인가요?”
  “아마 불란서에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인 것 같아요.”
  시내 구경을 하며, 계속 걸어가면서 남편은 미소를 짖고 물었다.   
  “옥스퍼드 시장을 뽑을 때는 직선이에요? 혹은 간선이에요? “
  “런던 같은 큰 도시는 직선인데 이곳은 의회가 뽑는 간선이에요.”
  얘기를 하고 가면서 목사님은 크고 흰 건물을 가리키면서 시청이라고 했다. 드디어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에 도착했다. 크라이스트 처치 대성당 바로 옆에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이 있었다. 캠퍼스도 제일 크고 학생 수도 제일 많은데, 총 681명이었다. 옥스퍼드의 대부분 단과 대학이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지 않는데. 이 대학은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에게 개방을 한다. 우리도 입장료를 내고 대성당에 들어갔다.

매주 토요일 밤 7시 찬양 예배가 있었다. 관광객들도 많이 참석했다. 성가대원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어린 소년 소녀의 뒤를 이어 청년 성인들의 순서로 줄을 지어 관중 앞을 지나 입장을 했다. 밝은 불은 꺼지고 대신 모두 촛불을 켰다. 성가대원들은 좌우로 앉았고 지휘자는 중간에 서서 지휘를 했다. 찬양은 반주 없이 4성으로 불렀다. 한 여성 대원 맑은 목소리로 선창하니 성가대원들이 화답하였다. 눈과 마음이 함께 열려 찬양의 정수를 듣는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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