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문제, 종교의 특성을 무시한 판단은 신앙의 존엄성 훼손
교회 문제, 종교의 특성을 무시한 판단은 신앙의 존엄성 훼손
  • 크리스챤월드리뷰
  • 승인 2019.08.0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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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생각과 사상처럼 각자의 신앙방식도 존중해야

“자아에 의한 세뇌로서 신비주의적 종교 그리고 이성에 의해 인식된 신념으로서 철학과 사상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종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발생된 문제들에 대하여 그루밍 혹은 세뇌라는 의미를 적용해 범죄로 규정짓는 것은 순전히 무지의 소산이다. 교회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성직자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세뇌된 신앙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종교는 그야말로 범죄 근원지가 되는 셈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한국 교회는 타종교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한 반면 유독 이단에 대해서는 매우 잔혹하게 대한다. 지구상에서 종교간 갈등으로 많은 전쟁과 희생자가 발생했다. 지금도 지구촌에서는 종교간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테러로 인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종교간 대립이라 혹은 폭력행동이 발생되지 않고 사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몇 천년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해온 불교나 유교, 그리고 무속 등은 외래종교는 기독교에 대하여 적대시 하고 갈등을 조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종교 국가에서 각 종교간 평화롭게 서로 존중하며 공존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난히 이단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서로 같은 하나님을 신봉함에도 믿는 방식이 다르다고 적대시 하는 것은 타종교인들에게 이해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독교 교회는 이단에 대한 적대감을 결코 버리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해 철저하게 배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과거 조선을 지배했던 유교사상으로부터 비롯된 페단이 아닐까 한다. 조선 사대부들은 유교사상에 몰입하면서 유교로 나라를 통치하고 사회의 규범을 만들었다. 이들은 성리학 등 유교사상을 두고 서로 첨예한 논쟁을 벌였으며 논쟁에서 진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가차 없이 권력을 통해 탄압을 했다. 조선시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유배를 당했던 사화는 모두 성리학이란 유교를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며 논쟁을 벌인 결과이다. 그래서 유학자나 사대부들은 가톨릭, 기독교 그리고 불교 등 타종교를 비롯 양명학 등 다른 유교사상 등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이단사설異端邪說이’이라며 혹독하게 배척했다. 이런 유교 정통이 한국교회에 그대로 이식되어 온 결과, 오늘 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현대 사회에서도 한국교회 내부에서 이단은 용납될 수 없는 신앙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종교의 특성인 신비성을 무시한, 말하자면 인간의 사고에 기초한 인식체계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철저한 반공주의가 지배했던 군사 독재시절, 우리 국민들은 공산주의 사상을 인간정신을 마미시키는 세뇌작용의 결과로 인식했다. 공산주의는 마약처럼 이성을 마미시키는 위험한 사상이었다. 그러던 공산진영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었다. 물론 중국의 정치체제는 여전히 공산주의이지만 사회 구조는 자본주의이다. 유일하게 지구상에서 정치와 사회 등 공산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 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의 공산주의는 구소련과 달리 보편적 사상에 토대를 두기보다 민족주의에 근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말하자면 북한의 공산주의는 노동과 분배보다 민족의 주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북한 공산체제가 오래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정신을 지배해 온 두 흐름은 종교와 사상이었다. 고대사회로부터 종교는 인간의 이성보다 더 우위에 놓여 있었으며 결코 이성으로 종교를 이해해서도 안 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종교는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서 선택하기보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세뇌에 의해서 유지되었다. 그래서 종교는 과학이나 혹은 합리적인 사고 즉 이성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이를 상호 부인하며 적대시 했다. 종교는 합리성이나 혹은 과학성과 달랐다. 그래서 신앙은 학습이나 연구를 통해 습득되는 믿음체계가 아니라 묻지도 말고 따지기도 할 수 없는 오로지 순종과 복종의 체계였다. 이런 종교의 특성은 세뇌이다.

과거 종교는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서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적인 것이었다. 근대에 들어서 종교가 자유가 보장된 오늘 날 종교는 온전히 각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졌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이성과 지식, 상식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무신론을 신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합리성이 발전한 오늘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종교는 세뇌에 의존하고 있다. 성서 혹은 경전을 통한 끊임없는 세뇌, 단지 상상 혹에서 존재하는 신을 믿는 것은 신이 그동안 인류가 축적해온 지식과 이성, 과학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그저 신비한 존재, 혹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막연한 신뢰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믿음은 오로지 성서 혹은 경전에 의한 세뇌, 또는 성직자들의 설교나 가르침에 의한 신뢰 등으로 인하여 자신의 내면에 체계화된다. 말하자면 스스로 과학적인 합리적인 사고나 이성이 아닌 종교의 신비, 그리고 지식으로 설명되지 않은 신적 존재를 믿고자 한 자아의 세뇌 등을 통해 사람들은 종교를 갖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직접 신을 보거나 혹은 신비적인 체험을 통해 종교를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불교 등 모든 종교는 스스로, 즉 ‘자아의 세뇌’ 그 자체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왜 그 종교를 갖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느냐고 물을 필요도 없으며 부처처럼 해탈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그저 믿음. 하나님은 존재하며 예수는 나를 구원해 줄 메시아라고 자신을 끊임없이 세뇌하면서 신앙을 지켜 가면 된다. 그것이 곧 종교다. 그러므로 종교는 자신의 내적 세뇌 그 자체이기 때문에 각 각 개인들의 신앙과 믿음을 이성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종교는 인위적으로 성직자 등 다른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뇌시킨 신앙과 믿음에 기초를 하고 있는 것이지 철학처럼 합리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최근 교회에서 발생된 성폭력이나 혹은 금전 등에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두고 소위 타인에 이한 즉 성직자에 의한 ‘세뇌 프레임’을 통해 설명하고 이해하려 한다. 공산주의 사상을 지식과 학습에 의한 세뇌로 이해하고 설명한 바와 같이 종교도 사상과 같은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철학과 사상은 세뇌가 아니라 신념이다. 사상과 철학은 타인에 의한 혹은 학습 등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서 신봉하게 되지만 종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스로 자아의 세뇌에 의해서 형성된 신앙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사상과 종교를 세뇌란 용어로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무지이다.  

이처럼 자아에 의한 세뇌로서 신비주의적 종교 그리고 이성에 의해 인식된 신념으로서 철학과 사상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는 몰락하고 종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발생된 문제들에 대하여 그루밍 혹은 세뇌라는 의미를 적용해 범죄로 규정짓는 것은 순전히 무지의 소산이다. 교회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들을 성직자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세뇌된 신앙에 의한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 모든 종교는 그야말로 범죄 근원지가 되는 셈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특히 타인에 의한 종교나 특정한 행동 혹은 생각방식 등의 세뇌는 스스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미성년자 혹은 발달장애자 등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용어이지 정상적이고 대학교육까지 받은 일반 지성인에게 적용될 용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으로 지성을 갖춘 사람들에게 종교는 외부에 의한 세뇌가 아닌 스스로 자아의 세뇌에 의해서 형성된 믿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각자의 종교를 존중해 줘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루밍의 원래 뜻은 애완용 동물들의 길들임에 적용된 것이다. 주인과 고양이 혹은 반려견 등 애완용 동물이 서로의 친밀을 위해서 행해지는 행동이다. 이런 의미의 그루밍을 마치 성관계를 목적으로 한 친밀행동으로 이해하면 인간 모독이다. 성관계 혹은 그 어떤 목적을 위해 친밀한 관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인간관계 모두 범죄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특히 그루밍을 여성에게 적용시킬 경우 여성을 애완용 동물로 비유되는 것이 된다. 이 역시 분노해야 할 용어이지 함부로 인간에게 적용될 용어가 아니다. 이렇게 무지한 용어를 마구 사용하고 범죄에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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