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 둘로 분열된 국민들 적대와 증오심만 난무(1)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 둘로 분열된 국민들 적대와 증오심만 난무(1)
  • 크리스챤월드리뷰
  • 승인 2019.10.2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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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보다 개인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는 불안한 사회

“화해와 용서의 실천력이다. 누구나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의 필요성은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고 있고,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 요셉은 형제들과 갈등을 유발해서 죽음의 위기를 겪었고 노예로 팔리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주인의 가족과 생긴 갈등으로 인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이민족 젊은이로서 총리가 되는 과정에서도 총리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반대와 견제와 모함에 응대하여 싸우지 않았고 보복하지 않았다. 자신을 해하려했던 형제들을 먼저 용서하고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기를 기다렸다가 용서하고 가슴으로 품었다. 용서는 보복은 신의 섭리에 맡기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잊는 것이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해줄 때까지 하는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후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두고 국민들은 둘로 나뉘어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었다. 일한 분열과 갈등의 여파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물러나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정치계는 물론 국민들의 대결구도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대로 국민 분열과 갈등이 지속된다면 결국 나라까지도 갈라질 정도로 심각하게 흐르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끊임없이 국론 분열 그리고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을까. 종교문제로 혹은 민족 문제로 갈등과 다툼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던 외국의 사례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민족과 종교로 인하여 테러 그리고 집단살상, 파괴 등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던 외국의 경우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그래도 우리나라에 결코 이러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안일한 태도였는지 새삼 반성케 한다.
우리나라는 혈통적으로 단일 민족성이 짙고 똑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통적으로 공유해 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족의 갈등보다 응집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강했다. 그런 만큼 우리민족은 종교나 인종문제로 갈등을 빚어오지 않고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왔다. 이렇게 평화로운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고, 남한에는 낡은 이념에 얽매여  분열되어 있다. 왜 이렇게 평화민족이 갈등 민족으로 변했을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갈등을 경험한다. 갈등은 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갓 난 아이와 이를 낳아준 어머니의 관계에서 조차도 존재한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나 이익이 충돌하는 것으로, 각 사람의 내면에도 있고 가족, 친구, 직장, 집단, 지역, 민족, 인종 사이 어디에든 존재한다. 그래서 갈등을 표출하는 방법과 수준도 그만큼 다양하다. 갈등이 인격적, 윤리적, 신앙적 차원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위나 집단폭력 혹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갈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늘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집단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인류 역사가 발전하면서 사회적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갈등 역시 다양한 양상으로 증폭되어 왔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과 다툼, 폭력과 불화를 심화시켜 왔다. 이 가운데 일제의 식민지배와 동족상잔이라는 남북 사이의 전쟁을 겪어 오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국가보다 더 많은 갈증 구조를 형성해 왔다. 특히 남북이 적대관계로 장기간 지속되어 온 분단 상황 속에서 북은 독재와 가난, 그리고 핵무기 등으로 인하여 한반도의 전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고 남은 급속하게 발전한 산업화 구조 속에서 빈부격차, 노사문제, 세대차이, 진보와 보수, 성차별 등등 여러 사회적 갈등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골 깊은 갈등에 빠져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까지 편을 갈라서 서로 상대방을 이 땅을 떠나야 할 존재로 대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기세다. 그 사이에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가 되었고 경제는 3만불의 고지에서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 10대 교역국의 위상을 자랑하면서도 사회통합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갈등지수는 최상위권이다.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외교적인 이합집산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국민들이 갈등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한발작도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민족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특별히 이주 노동자의 유입 그리고 세계화로 인하여 많은 외국인들이 국내에 거주하고 노동시장에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이들의 종교가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기 시작하여 우리 나라도 외국처럼 종교적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 시대에 접어든 만큰 사회적 갈등 요소도 그만큼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돌입했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이 갈등문제는 교회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경제적인 복을 부어주신 것은 복음을 세계에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명령이다. 이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진정으로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서 이 민족을 평화롭게 살게 만들어야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사회 체계의 발전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직과 운영으로 인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서 우리나라와 민족이 경험하고 있는 갈등의 문제에 어떠한 해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바로 갈등 해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갈등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미래의 남북통일은 물론 사회적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국교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이 나라의 갈등문제를 해결하면서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함과 동시에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갈등 구조는 무엇인가.

1.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갈등 특징들

우리는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시대별로 누적된 갈등 요소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먼 과거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유교와 신분체제로 인한 남녀갈등 그리고 양반과 상민이라는 갈등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다. 그리고 근대화에 접어든 시기에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제강점기를 살면서 친일과 항일로 갈라졌고, 그 후는 민주주의의 남과 공산주의의 북으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다. 이러한 비극이 치유되기도 전에 반공을 앞세운 군사 독재시대를 거치면서는 민주화 세력이 생겨났고, 산업화를 앞세운 독재통치 시대에서는 권력과 결탁한 특권층이 형성되면서 민주화 운동이 특권층의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해소하자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민주화가 완성된 시점에서는 우리 정당정치는 새로운 국가 미래를 설정하지도 못하고 기득권과 권력투쟁으로 이어 지면서 각자 이해관계에 얽힌 인물들이 모여들면서 정당들 간의 정권투쟁이 지속되어 왔다. 이로 인하여 여당과 야당의 정권이 교체되는 변화를 만들어 냈으나 이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권계층이 사회전반에 나타나면서 두터워졌고 대물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갈등이 매우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7가지로 정리해보았다.

1) 일제 식민시대의 잔재

조선 말기, 조정은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 사회적 기득권자들인 양반들은 오랜 세월동안 누려온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체제를 그대로 고수해 왔다. 그러나 근대화를 이룬 서구 열강들은 19세기말 마지막 남은 식민지 시장인 아시아 지역에 몰려들었다. 아시아에서유일하게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선진국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일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을 막아낼 힘이 없었던 조선은 ‘누구에게 의탁하여 나라를 보전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자주적인 개혁과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존하려는 사대적 외교로 인하여 국가 독립을 지켜내지 못해 결국 일본의 간계로 기회를 잃어버리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고조선 이래 처음으로 한반도의 지배권이 온전히 타민족에게 넘어가는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라를 넘기자고 주장했던 쪽은 다양한 변으로 자신들을 합리화하면서 일본이 주는 혜택을 누렸고 해방 후 그들의 후손까지도 그 덕을 누렸지만,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회복해야한다는 쪽은 일본의 탄압 속에서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으며, 그들의 후손들 역시 재산도 교육도 다 포기하는 고난을 함께하면서 해방 후에도 가난을 면치 못했다.
해방 이후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근대화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해 인재난에 복착한 우리나라 민주정부는 불가피하게 일본에 부역하며 경험을 쌓았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곧바로 터진 6.25 전쟁으로 인해 공산잔당의 처리에 힘을 쏟느라 친일세력을 청산한 기회를 놓쳤다. 그렇다보니 세월이 가도 친일청산이란 이슈가 틈만 나면 수면위로 떠오른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은 과정과 통치, 해방 후의 처리까지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기억일 수밖에 없기에 이번 정부에서는 친일은 심지어 남침전범 전력보다도 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을 정도다. 북쪽 정권의 수립에 참여하고 남침을 지원했던 김원봉은 국가유공자로 고려될 수 있으나 우리민족이 힘을 키울 때까지는 일본 통치를 수용하자는 민족개조론을 내세우며 친일했던 이광수는 그 이름이 용납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친일의 전력은 대한민국의 건국과정에서, 남침전쟁에서, 산업화 과정에서 어떠한 공을 세웠던지 그 죄과가 상쇄되지 않는다. 친일시비 문제는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2) 6.25전쟁과 이념 갈등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성공하고 중국에서 공산당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일제치하에 있던 지식인들은 새로운 정치이론에 관심과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사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일본이라는 큰 적을 물리침에 있어서 타협하고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남쪽에 자유민주진영의 대표인 미국이, 북쪽에 공산주의의 맹주인 소련이 진주하게 되면서 남과 북 모두에서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은 본격적인 세력다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진주한 미군과 소련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정권을 각각 세우게 되고 다른 진영을 탄압하게 되면서 갈등은 폭력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과 구 소련이 서로 핵무기로 대립하던 냉전체제로 인하여 우리 남북 국민들은 더욱 군사적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남북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국민으로서 통합되어 있었으나 냉전체제로 인하여 남븍은 완전히 적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동서 냉전체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방 이후 민족 간 분열을 끊임없이 야기했고 급기야 공산진영인 북한이 적화통일을 위해 남침을 도발하면서 치러진 3년이 넘는 전쟁기간동안 남한에서만 170여만명의 사상자와 행방불명자를 만들어내어 전체 국민 모두가 연관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남겼다. 전쟁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전쟁 전과 거의 비슷한 경계를 만들고 휴전해버리자 끝나지 않은 전쟁이 되어버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데도 북쪽은 언젠가는 남쪽을 자신들의 공산이념에 꼭 굴복시키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우리 남쪽의 머리 위에 놓여 진 숯불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군사적 무장을 강화될 수밖에 없었고 안보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로인해 남쪽에서는 북쪽과 관계된 사람이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 뿐 아니라 이에 관심을 가지는 자까지도 색출하여 처벌하였고 북쪽에서도 동일한 숙청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화를 당하면서 이념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렇게 해서 남한에는 ‘래드 콤프렉스’의 강풍이 불어 ‘친일 콤플렉스’가 국론분열의 중추가 되어버렸다.  

3) 군사 독재정권의 유산

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해야하는 책임을 맡은 이승만 정부는 미국에 더욱 의존하면서 공산세력을 몰아내고 전쟁의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독재를 시작했다. 독재에 부역한 이들 중에는 친일을 의심받는 이들이 섞여있었다. 이로 인해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등에 업은 독재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이에 항거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던 인사들은 민족민주화 세력으로 구분되게 되게 되었다.
이 투쟁이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로 끝나지 않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의 개발독재에 대한 항거로 이어지면서 갈등의 구조가 정착되어 버렸다. 군부독재세력은 세계최빈국인 이 나라가 살길은 다소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경제발전을 이루어내는 것이라는 명분으로 ‘잘 살아보세’ 구호하나로 20여년 가까이를 집권했다. 민주화 세력은 쿠데타도 군부독재도 인정할 수 없었다. 군부의 개발독재가 지속되면서 특권층과 노동자 계층이 생겨나게 되자 갈등의 양상은 민주와 독재, 특권층의 부정과 부패, 노동약자의 보호 등이 뒤섞이면서 복잡하게 얽혀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독재 지배계층이 반공사상을 중시하자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운동에 북쪽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통일문제를 끌어들였고 결국 반독재갈등은 이념문제까지 연계되게 되었다.
군부의 개발독재가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집권세력도 만만찮은 지지기반을 확보하였고 민주화 세력도 부동의 지지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렇게 견고해진 양측은 정치세력화 되어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 양측은 국가 발전을 위하여 상대방을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무너뜨려야할 적으로 간주하여  자신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권을 잡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각자의 지지기반이 가진 갈등요소들을 적극적인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정권다툼이 극단적인 국민간의 길거리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나라 전체가 방향을 잃게 만들고 있다.

4) 동서 지역갈등과 정치

한반도에서 지역갈등의 역사는 길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서는 지역별 영주가 인정되어 특별한 지역갈등이 없었으나 유독 북쪽 변방지역에 대한 차별은 고려시대부터 노골화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그 차별이 고착화되면서 북쪽지역에서 반발이 여러 차례 나타났다. 해방 후, 타의에 의해 남과 북이 갈리면서, 고구려이후 처음으로 북쪽지역에 독립정권이 수립되었고, 남과 북이 정치이념을 달리하면서 남북의 갈등은 이념갈등이자 지역갈등으로 첨예해질 수밖에 없었다. 분단 이후 한 순간도 적화통일을 포기한 적이 없는 북쪽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료하면서 남과 북의 갈등은 극에 달하여 있다. 남과 북의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 내에서 벌어지는 지역갈등이 아니라 미사일이 도달하는 거리에 있는 모든 나라들이 관계되는 국제적인 갈등문제여서 해결이 가능할 것인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갈등은 군사독재 정권 시절이 낳은 가장 불행한 갈등의 하나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군사정권은 반공주의 정책에 의하여 ‘빨갱이 프레임’을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특정지역을 ‘빨갱이 지역’ 특정 정치인을 ‘빨갱이’로 몰아 여론전을 펼쳐 지역갈등을 부추겼다. 여기에 남쪽에서는 산업화과정에서 호남지역이 낙후되고 정치적으로 호남의 지도자가 정권을 잡지 못하게 되자 호남과 영남의 갈등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군부독재 하에서 산업화의 혜택이 영남지역에 치우치다 보니 자연스레 호남은 민주화 세력의 편에 서게 되고 군사독재 갈등이 지역갈등과 얽혀버리게 되었다. 특별히 순수 민간인의 민주화 요구를 군사적 위력으로 제압하면서 많은 사상자를 낸 5.18은, 전쟁 후 민주화 투쟁의 기간 중 벌어진 민주세력 탄압 중에서 가장 참혹한 것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를 광주지역에 남겨버렸다. 이와 같이 군사 독재 정권은 이런 식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결국 국론분열의 씨앗을 잉태했던 것이다.

5) 산업화와 빈부갈등

해방 후의 최빈국에서 70년 만에 교역량 세계 10위국가로 압축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폐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 산업화는 긴 시기에 걸쳐 달성된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성취하려다 보니 군력과 결탁된 재벌위주의 경제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정부주도로 정책의 성과를 거두려다보니 특정 경제주체들이 이를 도맡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함께 부정과 부패가 만연했다. 순식간에 재벌이 생겨나고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정부가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일을 눈감아주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뿐 아니라 빈부의 격차도 심화되었다. 독재와 정경유착이 심한 만큼 이에 노동자의 인권과 복지 향상을 위한 노동운동은 민주화세력과 함께하게 됐고 지금도 이런 유대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독재가 종식되자 정치의 관심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로 넘어가면서 경제발전의 성과를 분배하는 수준과 속도가 또 다른 갈등요인이 되어버렸다. 한쪽은 이만큼 성장했으니 그 성과를 이제 분배에서 소외된 계층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겨우 가난을 벗어날 수준에 올라왔을 뿐이니 분배보다는 조금 더 성장을 이루어 나눌 파이를 더 크게 만들어야할 때라는 논리로 충돌한다. 이 둘 사이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제사상이 충돌하는 부분이 존재하면서 자연스레 이념갈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득 불균형과 부의 쏠림현상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의 요소가 되고 말았다.
반독재투쟁이 길어지면서 투쟁의 주체들이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게 되고 기존의 경제 특권층과 함께 또 다른 특권층들이 분야별로 생겨나게 된다. 특권층들이 사회적 약자의 기본적인 법적 권리와 인격적인 대우를 하지 않음으로서 ‘갑질’과 ‘미투’ 논란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형성된 특권층은 언론과 노동 분야에까지 생겨나서 보이지 않는 불공정한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그 혜택의 대물림을 위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협력관계를 보이지 않게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특권층은 우리사회가 극복해야할 또 다른 과제가 되어있다.
 
6) 이주민 및 종교 갈등

우리나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몇 개의 부류로 나뉜다. 산업화에 필요한 인력을 조달하기 위해 90년대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해외동포들이 이주해오게 되었다. 거기에다 북쪽 주민들이 탈출하여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가 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또한 결혼을 목적으로 이주해오는 외국인 여성들의 수도 20여만명에 이르고 있다.
자주적인 근대화의 시기가 짧은 탓에 우리나라의 국민들은 세계화 그리고 다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기에 너무 열려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경제적 사회적 필요성 에 의하여 여러 나라 이주민들을 수용하였지만 이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정착하여 더불어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이주민들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들에서 왔고 교육수준도 우수하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국민들이 그들을 따뜻하게 품지 못하고 경계선을 두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어떻게든 우리국민들보다 적은 임금을 주려하면서 차별하고 있으며, 중국지역에서 이주한 동포들도 마찬가지로 3D 직종에서 일하면서 차별을 경험한다. 결혼 이주민들도 그들이 출산한 자녀들과 함께 언어문제와 외양으로 인한 차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히 새터민에 대한 차별과 문화차이로 인한 정착의 어려움으로 인해 북으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남북관계에 따라 처우가 달라져서 그들의 정착을 어렵게 하고 있다. 더구나 이주민의 숫자가 늘어가고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면서 치안 등의 문제로 일반국민들의 경계심이 커져가고 있다.
특별히 이주민들과 함께 기존에 이 땅에 정착한 종교들 외에 새로운 종교도 유입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다행히도 기존의 종교들 사이에는 교리 간에 상호 적대시하는 요인은 없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새로 유입되는 종교 중에는 기존의 종교와 마찰의 요인을 갖는 것도 있어서 향후에 새로운 사회적 갈등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을 경계하게 된다.
 
7) 세대갈등
 
세대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그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세대는 자녀세대가 자신들이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사는 것 같지 않아 미덥지 못한 것이고 자녀세대는 세상이 바뀌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몇 가지 면에서 전에 없이 특별하다. 먼저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성장 시기 경제적 환경이 지금처럼 크게 차이난 적이 없다. 부모시대는 잘 살기 위해 정치적 인권적 권리를 희생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을 당연시했지만 차녀세대는 권리와 기회의 평등 그리고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는 지난 30년여년에 걸쳐 이루어진 정보의 생성과 전달 방법의 혁명적 변화이다. 부모세대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에 종이와 연필이 전부였지만 자녀세대는 슈퍼컴퓨터인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고 동영상과 음성 그리고 그래픽스로 정보를 교환한다. 소통의 언어도 도구도 바뀌어 버렸다. 세 번째는 가족 구성의 변화이다. 자녀세대의 대부분은 형제가 없거나 한명정도이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없다. 이들이 누린 혜택은 어느 세대보다 크고 많다. 그럼에도 이들은 부모세대가 경제적으로 이념적으로 힘든 혼돈의 시대를 살아온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민족적 과제인 통일도 짐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성세대와 신 세대들은 각지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서로 가치관 면에서 공통점을 찾지 못하고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운 결과 기성세대들은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할 젊은 세대들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역시 젊은 세대들도 낡은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해 세대간 갈등을 야기해 왔다.  
이렇다보니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는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눈도, 남북관계를 대응하는 방법도, 복지정책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자녀세대는 노년인구가 청년인구보다 많아지는 사회를 살아가야한다. 부모세대를 자신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걸림돌이 될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당장에 지금 부모세대들로 형성되어 있는 정치권에 의해 자녀세대가 살아갈 미래의 틀이 형성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의 삶에 대한 조언을 부모세대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세대간 대화는 단절되고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사는 1인가구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2.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

이와 같이 원인들로 인해 우리사회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여러 방면으로 펼쳐왔지만 그 결과는 별반 성공적이지 못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명확히 이해하고 관련 당사자들이 서로가 수용할 수 있는 선을 찾아 화해하는 것이 최선이다. 근본적으로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을 펴고 발생한 갈등을 해결해야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게 있으나 무엇보다 이들이 풀어내지 못할 때 이를 중재하고 해결해주어야 할 주체는 종교이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 종교는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보다 물질에 더 중시하고 하면서 기복신앙에 젖어 있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 여러 종교들 사이에 갈등과 대립관계는 미미하지만, 그러나 종교로서 사회적 역할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사회성이 강하다. 불교처럼 수행 종교가 아니다 보니 승려와 달리 목회자들이 성직자이면서 일반인과 다름없이 생활한다.  그런 만큼 기독교는 일생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세속화되어 있다. 기독교 장점은 여기에서 빛이 난다.

기독교가 제 역할을 할 때 교회도 부흥하고 전도활동도 활발하여 그 사회가 평화로운 모습이 유지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항상 하나님의 정의를 외쳤고 이를 이 세상에 실현시키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교회가 그 역할을 망각하고 물질과 기복신앙에 빠져 사회를 외면하고 오직 개교회적 성장에만 치우칠 때 하나님의 정의는 사라지고 말았다. 갈등을 해소해줄 장치가 없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웠다. 진정한 기독교인 참된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그 진정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한국교회는 이와 거리가 멀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교회는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갈등의 완총작용을 해야 할 교회가 그 의무를 저버린 우리 사회는 결과적으로 갈등과 적대상황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국태민안(國泰民安)에 힘쓰기보다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정치세력들은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했고 때로는 불순한 목적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키우기까지 했고, 지금도 심각한 수준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탐하는 정치모리배들, 그리고 세속 물질주의에 젖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외면한 교회,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개혁되어야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해소되고 평화가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1) 일본관계와 친일 갈등 문제 해결  

일본과 관계가 악화된 근본원인이 식민지배 시기에 발생된 탄압과 수탈의 문제이다. 불행한 한일 과거사는 해방이후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여 오늘날 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정신대 그리고 강제 징용과 징병 등 일제가 이 땅에서 저지른 온갖 종류의 탄압과 수탈로 인하여 우리 국민들은 골이 깊은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이 가운데 친일문제는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한 변수이다. 과거 정부는 일본과 화해하고 국가의 안보 및 산업화에 도움을 받기 위해 해방 후에 단절되어있던 국교를 정상화하였고 역대정권들은 다양한 협약을 통해 일본과의 화해와 협력을 추진해왔다. 다소의 굴곡은 있었지만, 한일관계는 이웃으로써 가까워지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일본도 과거사 반성노력이 있었다. 이와 병행해서 지방자치단체들과 민간단체들도 적극적으로 일본과 교류를 확대하고 경제교류도 활발해졌으며, 특별히 한국교회는 일본교회와 교류하면서 일본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제강점시대의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면서 한일간 의 화해에 공헌했다. 이런 노력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의 친일파들의 후손이 부를 상속한 것이 간간이 문제가 되는 것 이외에 특별한 친일논쟁은 부각되지 않았고 일본과 가까이 지낸다고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일본에 극우정권이 들어서고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다시 충돌하게 되면서 한일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과거정부가 맺었던 일본과의 협정들에 대해 우리 사법부가 다른 해석과 판단을 내리고 현 정부도 과거정부의 정책을 뒤집었다. 그리고 정부의 이런 정책에 반대하는 것을 친일로 규정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우리 사회에 ‘토착외구’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신 친일파 청산문제가 국가적 이슈가 되었다. 이에 편승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친일의 프레임에 몰아넣는 일들이 발생하면서 정치싸움의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하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할 수는 없다. 새로운 세대에게 세로운 역사를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는 과거청산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 사이의 과거 청산은 정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의 전통과 국민들의 역사관, 그리고 가치관이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항상 적대관계, 혹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국가 사이의 잘못된 역사 청산이 어렵다. 무엇보다 미래 지향적인 생각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는 정치가들에게 맡기고, 국민들의 교류는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시행되고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는 국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국민들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이 역사 갈등과 국가간의 적대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일제에서 독립한지 75년이 되는 시점에서도 친일문제가 갈등의 요소가 되는 것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친일의 범위와 청산의 방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제라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일제의 강점기에 궐기한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나와 있는 것을 참고했으면 한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해, 일본의 잘못된 생각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우리와도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열자' 현대 사회는 민족 중심이 아니라 인류 중심의 보편세계로 변하고 있다. 과거 자기 나라를 수호하려고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류 생존을 위해 싸운다. 그만큼 세계는 하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웃국가를 적대시 할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웃집으로 인식해야 한다. 한일 강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감정에 머물지 말고 인류라는 보편적 인간애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 남북의 화해와 협력

우리 민족의 현재와 미래에 해결해야할 가장 큰 과제는 북쪽과 평화공존 하는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서로에 대한 관점이다. 북쪽에서는 남쪽은 친일세력이 세워서 그 후손들이 지배하였고 민족해방전쟁에 미국이란 외세를 끌어들여 북쪽의 주민들을 몰살시키면서 통일의 기회를 무산시킨 반민족주의자들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치하에서 살고 있는 남쪽 동포들을 구해내야 하며 이 역사적 과업은 김일성 수령의 혈통만이 완수할 수 있으므로 그 가계에 충성하고 일치단결하여 수령을 목숨으로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 신앙으로 되어있다. 남쪽에서는 북쪽을 김일성 왕조가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북한 주민들을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굶주림에 몰아넣으면서까지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여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존재로 본다.
상호간에 이런 관점을 버리지 못한 채 7.4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한 이래로 지금까지 때로는 만나고 때로는 문을 닫기를 50여년 동안 반복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성과 없는 만남이 되풀이 되면서 남쪽에서는 소위 남남갈등이라는 이념갈등을 생겨났다. 북쪽에 우호적인 소위 햇볕정책이 등장하면 우리가 북쪽에 굴종한다고 반대하고, 북쪽을 압박하는 소위 봉쇄정책이 등장하면 전쟁을 원하는 것이냐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더구나 현 정부는 북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성시키면서 촉발시킨, 한반도를 넘어 북미간의 갈등문제를 햇볕정책으로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북이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이를 인정하는 방안이 도출되면 남쪽 국민간의 긴장과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 갈등 해소의 첫 번째는 이념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랑으로 뭉쳐진 민족공동체 의식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6.25 전쟁으로 골이 깊게 박힌 적대감과 원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은 정치 혹은 경제, 문화 등이 할 수 없고 오로지 종교만이 가능하다. 그것도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인 한국교회가 맡아야 할 사명이다. 특히 보수교회는 더 이상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그리스도 사랑의 신앙적 관점에서 북한을 바로 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듯 북한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민족 화해의 길을 열어 나가는데 한국 교회가 앞장 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달성할 수 있다. 북한의 주민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길로 인도해야 하지 않을까.

그 전제 조건이 남북 화해로 갈등구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그것이 한국교회의 사명이며 의무임이라는 것을 한국교회가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북쪽과의 화해를 위한 노력은 정부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정치권이 각종 정치적 구호로 북쪽의 생각을 바꾸어보려 하는 동안 한국교회는 형제애의 관점에서 남북의 화해 방법을 모색했다. 북쪽사회에서의 약자를 사랑으로 끌어안기 위해 식량과 의약품 그리고 생활필수품을 지원하고 그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특별히 평양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일은 정부차원에서는 할 수 없는 시도로 한국교회가 거둔 큰 성과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북쪽에 대한 지원이 북의 지도자만을 위한 것으로 통일을 어렵게 한다는 생각을 가진 보수층의 반대로 인해 역시 한국교회도 둘로 갈라졌다. 통일문제를 놓고 한국교회가 분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통일에 대한 신학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가 합치할 수 있는 방안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일을 숭실대학교가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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