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오병이어의 표적
6장 오병이어의 표적
  • 이재록 목사
  • 승인 2019.12.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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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목사
이재록 목사

1.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6:1~4)
  성경은 갈릴리 호수를 바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호수가 매우 커서 바다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그 모양이 하프와 비슷하다 해서 긴네렛 바다, 신약에서는 게네사렛 호수, 디베랴 바다라고도 불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이곳 갈릴리 해변 인근 지역을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둘씩 파송받아 복음을 전하며 권능을 행하니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한적한 곳에 가서 잠시 쉬고자 배를 타고 디베랴 바다 건너편,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납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여러 고을에서 찾아옵니다. 오히려 먼저 그곳에 도착하여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붙좇는 큰 무리를 보고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유월절을 앞둔 어느 날의 일입니다. 그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날이 저물어가니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이 염려합니다. 그곳은 빈 들이라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 빌립을 시험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6:5~7)
  어느 덧 날이 저물고 거의 종일토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들이 허기가 질 것을 안 예수님은 빌립에게 어떻게 이들을 먹일 수 있을지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해결 방법을 알면서도 빌립의 반응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를 시험한 것입니다. 물론 이는 빌립을 난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에게 스스로 점검하여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시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않을 때 원수 마귀가 주는 시험과,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기 위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험은 믿음으로 잘 승리하면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같이 영육 간에 축복을 받습니다. 반면 자신의 잘못으로 시험이 온 경우에는 회개하고 돌이켜 말씀에 순종한다 해도 축복이 오는 것은 아니며 단순히 시험이 끝나는 것으로 그칩니다.
  예수님의 갑작스런 질문에 빌립은 재빨리 계산합니다. 한 사람당 필요한 양식과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고 돈으로 환산한 뒤 자신 있게 대답하지요. “각 사람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데나리온은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은화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이니 이백 데나리온이라면 노동자의 이백 일 품삯이지요.
  빌립의 계산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참 믿음이 있었다면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주가 하실 줄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예수님의 능력을 아직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동원하지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히고 맙니다. 그러나 영적 믿음을 가지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막 9:23).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영적 믿음을 지니지 못한 제자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6:8~10)
  예수님과 빌립이 대화하는 사이 안드레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혹시 먹을 것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많은 사람 사이를 오가며 찾았는데 고작 한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였습니다.
  예수님께 상황을 알리면서도 안드레는 너무 적은 양이라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누가 보든 턱없이 부족한 양입니다. 제자들은 그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무수한 기사와 표적을 보았지만 아직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고백하지만 막상 눈앞에 어려운 문제가 닥치면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고 힘들어합니다. 안드레를 비롯한 제자들 역시 머리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일 뿐, 중심에서 믿고 행하는 영적 믿음을 갖지 못한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오십 명, 백 명씩 무리지어 앉게 했습니다(막 6:40). 마침 그곳은 잔디가 많아 무리지어 앉기 좋았지요. 어찌나 수가 많은지 빈 들은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입니다(마 14:21). 여자와 아이들 수까지 합친다면 족히 1만 명이 넘는 인파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수효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1만 명이든, 10만 명이든 어차피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때문이지요. 질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운 병이라 해서 응답받기 쉽고, 중한 병이라 해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각자 믿음의 차이일 뿐,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습니다.

4. 오병이어의 표적을 베푸신 예수님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6:11~13)
  제자들이 가져온 떡과 고기를 축사하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나눠 주도록 합니다. 온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닌 사람들이니 얼마나 배고프겠습니까. 그들을 배불리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들이 원하는 대로 떡과 고기를 나눠 주는데도 줄지 않습니다. 1만 명이 넘는 무리가 배불리 먹고도 곳곳에서 음식이 남았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양식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찰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이 남은 양식을 거두라 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표적에 대한 증거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이날 단순히 사람들이 배불리 먹는 데 그쳤다면 얼마간 기억으로 남았다가 잊힐 것입니다. 그러나 거둬들인 빵과 물고기는 표적이 일어난 사실을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면 열두 바구니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성경에는 숫자 하나까지라도 다 의미가 있습니다. 12는 빛의 수이며 온전함을 나타냅니다(요 11:9). 이스라엘 열두 지파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천국 새 예루살렘의 열두 진주문 등 하나님께서는 12라는 숫자를 복된 약속의 증표로 사용하십니다. 남은 양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는 것은 온전히 빛 곧 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과 축복을 넘치게 받을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5.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6:14~15)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표적을 본 사람들은 술렁였습니다. 온갖 질병이 치료될 뿐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배불리 먹자 여기저기서 열광했지요.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고백하며 그곳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사람들은 구약에 모세나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신 18:15). 게다가 당시는 로마의 속국으로서 압제를 당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보니 지혜와 권세 있는 말씀, 표적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표적을 통해 참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영광을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억지로 왕 삼으려는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 하시고 무리를 보낸 후에 자신은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마 14:22~23). 예수님은 왕이 되려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게 하려고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한 것입니다(요 4:48 ; 막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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