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여행(42)
시간의 여행(42)
  • 勁草 한숭홍 박사(장신대 명예교수)
  • 승인 2020.01.12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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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철학과 신학, 그 여정의 교수
① 한숭홍 목사고시 수험표(접수번호 86-227) ② 한숭홍 목사고시성적통지서(1986.7.28.)
① 한숭홍 목사고시 수험표(접수번호 86-227) ② 한숭홍 목사고시성적통지서(1986.7.28.)

목사고시 

   1986년 2월 25일(화) 총회 목사고시위원회에 5가지 서류(고시청원서, 이력서, 장신대 신대원 수강증명서, 논문 1편, 사진 2매)를 1차로 제출했다. 그리고 3월 3일(월) 추가 서류 5가지(구약 주해, 신약 주해, 설교 원고, 추천 및 의견서, 이력서)를 제출했다. 4월 15일 대전 한남대학교에서 목사고시 시험을 봤다. 고시 과목은 성경 필기시험(50분). 구약 주해, 신약 주해, 설교, 신앙고백(고시 장에서 당일 필기로 제출), 헌법 필기시험(50분), 교회사 필기시험(50분), 논문(제출), 면접 등 9과목이었다. 나는 1986년 7월 28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시위원장 김학만, 서기 황용문)로부터 목사고시성적통지서와 목사고시합격증(제86-227호)을 받았다. 한 번에 모든 과목에 합격하여 나로서는 심적으로 큰 부담을 덜었다.

③ 목사안수식(1986.10.28.) ④ 서울북노회장 권면사 ⑤ 목사안수 받은 5 목사⑥ 안수식 후 찍은 기념사진(앞줄 권사님들, 뒷줄 왼쪽 3번째부터 이창은 장로, 문전섭 목사, 박승기 목사, 그 뒤에 김동린 장로)
③ 목사안수식(1986.10.28.) ④ 서울북노회장 권면사 ⑤ 목사안수 받은 5 목사⑥ 안수식 후 찍은 기념사진(앞줄 권사님들, 뒷줄 왼쪽 3번째부터 이창은 장로, 문전섭 목사, 박승기 목사, 그 뒤에 김동린 장로)

삼양제일교회 협동 목사 20년

10월 2일(목) 삼양제일교회가 나를 부목사(사실상 협동 목사)로 청빙 한다는 서류를 서울 북노회에 제출했고, 문제없이 통과되어 10월 28일 서울 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부터 삼양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오후 2시 예배 설교를 하고, 청년부 지도를 하며 지냈다. 나는 이년 정도만 당회장 홍재구 목사님을 도우며 지내려 했다. 2년이 지나 목사님께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나를 도와 같이 있자고 간곡히 붙잡았다. 장로님 8분도 같이 지내자고 말렸다. 그 일 년 후에도, 또 그 후에도 몇 번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목사님은 전혀 미동치 않았다.
   정말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나는 너무 감격했다. 교인들 누구고 시비 걸거나 문제 일으키지 않고 매주 만나면 너무 반가워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20년이 흘러갔고 홍 목사님이 은퇴하시게 되어 나도 같은 날 사임했다. 장로님들은 계속 있으라며 간곡하게 만류했지만 나는 새로 부임할 목사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가는 게 도리라며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2006년 1월 8일 은퇴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 지하 식당에서 교회에서 마련한 음식을 나누며 송별회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남선교회와 여전도회 등의 부서에서 “목사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등의 따뜻한 마음과 정이 담긴 예쁜 선물들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성의를 생각하며 마음이 뭉클했다. 그러면서 그분들의 사랑을 느끼며 끈끈한 인간애의 뜨거움이 내 마음을 채웠다. 참 순박하고, 신실하고, 깨끗한 사람들과 20년 동안 지내며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았다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은 계속 지금도 이어진다. 그 후 내가 장신대 은퇴할 때도, 소식을 듣고 목사님과 장로님들, 교인들이 많이 와서 축하하며 옛정을 나눴다. 2016년 아내가 소천했을 때도, 장례식장에 많이 와서 애도를 표하며 나를 많이 위로해 주었다. 발인 예배 때도 와서 고인과 영결하며 깊은 정의(情意)로 애석함을 표했다. 나는 이분들에게서 성도의 신앙과 인간애가 성화 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⑦ 1986년 10월 28일 목사안수 후 찍은 기념사진(앞줄 왼쪽 박기정(홍재구 목사) 사모, 둘째 줄 왼쪽 홍재구 목사, 오른쪽 부모님)  ⑧ 어머니에게 제자 목사가 인사 ⑨ 인창교회 앞에서 찍은 가족들 기념사진 ⑩ 삼양제일교회에서 취임 후 첫 설교
⑦ 1986년 10월 28일 목사안수 후 찍은 기념사진(앞줄 왼쪽 박기정(홍재구 목사) 사모, 둘째 줄 왼쪽 홍재구 목사, 오른쪽 부모님) ⑧ 어머니에게 제자 목사가 인사 ⑨ 인창교회 앞에서 찍은 가족들 기념사진 ⑩ 삼양제일교회에서 취임 후 첫 설교

교육과정 심의위원

   1992년 2월 22일(토) 교육부 사회과학편수관실 이창조 연구사로부터 공문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즉 ‘종교교과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 위촉하고자 하니 허락해 달라는 것이었다. 같은 날 학장에게 교육부 장관 전결로 된 ‘교육과정 심의위원 위촉’장이 발송되었는데 “교육과정 심의규정(대통령령 제4388호)에 의거 귀 기관의 교수 한숭홍을 교육과정 심의위원으로 위촉하오니 위촉장을 전달해주시고 추후 개최예정인 교육과정 심의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분류번호 교과 25150-53)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고등학교 종교 과목은 교양선택이었는데 1987년 제5차 교육과정부터 필수선택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종교재단이 설립한 학교에서 채택한 종교 교과서를 인정도서로 승인했으나 여러 종교에서 불편부당함을 지적하여 종교 교과서를 새로 만들려고 모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제1차 교과과정 심의회가 5월 16일(토) 오전 10시에 중앙교육연수원 2층에서 모였다. 윤이흠(서울대 종교학과), 김승혜(서강대 종교학과), 김경재(한신대 신학과), 박선영(동국대 불교학과), 김종서(정신문화연구원) 등 모두 11명이 참석했다. 우선 교육부 이창조의 사회로 임원 선출을 했는데, 윤이흠을 위원장으로 박선영을 부위원장으로, 장익 법사를 서기로 선출했다. 윤 위원장이 사회권을 넘겨받고 회의를 진행했다.

⑪ 성경공부 지도하던 청년들과 야외예배  ⑫ 주일 예배 후 청년들 우리 집에서 모임(1988.4.)
⑪ 성경공부 지도하던 청년들과 야외예배 ⑫ 주일 예배 후 청년들 우리 집에서 모임(1988.4.)

회의는 매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위원마다 특정 종교인으로 이 모임에 참석했기 때문에 논의 자체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다. 나는 김종서 박사가 이 작업의 기초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김 박사는 모두 발언을 통해 2월에 교육부 부탁을 받고 그간 여러 종교와 접촉하며 공청회 등을 통해 종교 교과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의견을 수렴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의 설명 요지는 세 가지로 간추려지는데, 첫째, 고등학생들은 입시 위주로 공부하는데, 종교 교육이 큰 부담이 된다. 생활 종교를 가르치는 정도로 교과서를 만들되 종교학 교재여서는 안된다. 둘째, 특정 종교에 편향된 교과서보다는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보편적으로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종교를 일반 선택 과목의 하나로 개방해야 한다. 불교 학생이 기독교 학교에 배정되었을 경우 의무적으로 기독교를 배워야 하는 것은 신앙을 강제로 주입하는 것에 다를 바 아니다.

  

⑬ 이창조 연구사 위촉 서신(1992.2.22.) ⑭ 교육부 장관 위촉장(1992.3.1.) ⑮ 서강대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연구위원회에서 제출한 「고등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시안(종교)」(1992.4.) ⑯ 교육부에서 제출한 「제6차 교육과정 고등교육 종교 교육과정 개정안」(1992.6.)
⑬ 이창조 연구사 위촉 서신(1992.2.22.) ⑭ 교육부 장관 위촉장(1992.3.1.) ⑮ 서강대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연구위원회에서 제출한 「고등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시안(종교)」(1992.4.) ⑯ 교육부에서 제출한 「제6차 교육과정 고등교육 종교 교육과정 개정안」(1992.6.)

이 세 가지 요지를 놓고 토론이 붙었는데 대다수 위원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오가는 토론 내용을 경청하며 메모해 놓고 발언권을 얻어 “지금 이 시안에 따르면 군소종교와 한국의 3대 종교를 동일시하며 한 차원에서 취급하겠다는 것으로 들리며, 모든 종교를 상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종교마다 고유한 신앙과 전통이 있으므로 종교를 일반화하거나 평준화하면 안 된다. 종교를 일반 선택으로 하는 것도 문제가 크다, 예컨대 기독교 학교 설립 목적은 기독교 신앙을 체계화해서 건전한 신앙을 갖도록 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데, 여러 선택 과목 가운데 하나로 종교를 선택하게 한다면 종교재단의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신앙 교육을 할 수 없다.”라는 취지로 내 의견을 표명했다. 내 말이 끝나자 곧바로 염광여고 교장이신 김정열 선생께서 같은 취지로 말을 이어가며 특수 종교에 의해 설립된 학교의 교육이념과 목적을 참고해서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 두 명 외에는 모두 김 박사 발표 안에 동의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렀다.

   나는 5월 16일에 모인 제1차 교과과정 심의회에서 종교 교과서를 새로 만들기 위해 각 종교의 의견을 수렴하여 1차 시안을 만들고 제2차, 제3차로 모임을 이어가며 최종안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미 1992년 4월에 서강대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연구위원회에서 「고등학교 교양선택 교육과정 시안」(종교)을 작성해서 발표했고, 그 내용은 1992년 6월 교육부에서 만들어 온 「제6차 교과과정 고등학교 종교 교육과정 개정안」과 여러 면에서 유사하거나 대의(大意)는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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