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S의 관계
나와 S의 관계
  • 피러한(한억만)목사
  • 승인 2020.04.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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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서 가정에서 가장 먼저 인간관계를 경험해본다.  점차 성장하면 학교와 직업을 통해 다양한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관계를 분류하게 된다.   DISA분류법에서는 인간관계를 지배적인 레드, 고무적인 엘로, 안정적인 그린, 그리고 분석적인 블루 4가지로 나누었다.  컬러가 주는 이미지가 있듯이 각 유형의 성격이나 특징이 대충 짐작이 간다.   나는 더 단순하게 분류해 봤다. A그룹은 그린처럼 언제나 함께하고픈 사람이다. B그룹은 블루처럼 여러모로 내게 유익한 존재들이다. C그룹은 레드처럼 도전적이기에 분석이 필요한 자들이다.  문제는 이 3타입에 포함되는 않는 옐로 같은 S그룹이다. S는 그냥 special의 약자로 여러 의미를 담고 있지만 한 마디로 4차원적 인간이다.     

1차원은 점처럼 한쪽만 보고 사고하기에 ‘자신’만 아는 그룹이라면, 2차원은 점을 연장시켜 선은 만들듯 ‘자신과 상대’를 안다 해도 여전히 단편적 사고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공간적인 3차원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영역까지 배려하는 좋은 이웃이다.  4차원은 이런 3차원을 벗어난 초현실적 사람이다.  S를 4차원이라 여기는 것은 그들은 무슨 사연인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해 돈키호테가 되면서 그의 충실한 종인 산초판자를 찾고 있는 몽상가들이다.   그래서 S들은 겉보기엔 조금 부족하게 보이나 실상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단순하여 말초적 반응들을 자주 보여준다. 또한 엉뚱하면서 영악스러워 계산된 이기적 행동도 부족한지 때론 그 망상을 실현시키느라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A나 B보다는 4차원적인 그들에 대한 내 반응이 인생을 만들고 있는 일이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 세상이 담을 수 없고, 세상을 초월했던 사람들은 지능과 상관없이 두 가지 영감이 공존해왔다.  세상에 유익을 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유 없이 거리끼는 존재가 될 것인가. 선택은 본인의 과제다.   융은 사람이 처음에는 둥근 마음과 영혼을 소유했지만 풍파에 시달려 모가 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세상에서 내가 상처 받지 않고 살수 없듯이 내게 편하고 쉬운 사람 역시 세상엔 없다.   우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자신은 결코 S들과 상관이 없다면서 그들을 별난 사람으로 여긴다.  이렇게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면 남을 얕보거나 무시하기가 일쑤며 또 남을 칭찬하는 데는 인색한 사람이 된다.  자기 외에는  모든 것이 어설프게만 본다.     

어느 날  어떤 S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람을 나누듯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느 급에 놓을까?’  특별히 S들은 역시나 나를 100% SS라고 여길 것 같다.  조금만 관찰해 보면 나도 당연히 S가 될 소지가 다분함에도 나는 내 입장에서 버거운 사람들을 S로 취급했었다.   이렇듯 S에 대한 편견은 나 스스로를 더 견고한 SS(super special)로 만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면 자신을 진실로 이해해 주고 자기편을 찾는 꿈꾸는 소년이 된다.   인생이 고통스럽게만 여겨지는 것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세상이 모가 나 있고 인간 자체가 모가 나 있는데 나보다 선한 사람을 찾는 다는 것은 돈키호테가 산초판자를 찾는 꼴과 다르지 않다.     

미 듀크대에서 8개월 동안 운동유무에 따라 복부지방이 약 8% 감소된 팀과 반대로 8% 늘어난 그룹이 있었다.  이 결과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운동이라는 고통에 따라 복부가 달라지듯 인생에서 고통은 반응에 따라 극과 극의 결과가 나타난다.  ‘I suffer, therefore I am.’라는 키에르케고르 말대로 인간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알아간다. 인생은 고통에 대한 반응이다.   루이스는 하나님은 우리가 평안할 땐 귓속말로, 열심히 일할 때는 보통말로, 고통과 시련 중에는 고함을 질러 말씀 하신다고 했다.  그가 내 자아방어기제를 깨는 방법은 약함, 외적인 환경이나 불가항력적인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은 역시나 무수한 S들을 통한 연단이다.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S들보다 더 특이한 SS적인 자아 태도에 따라 체감도는 달라진다.     

불안한 글로벌 시대에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며 큰 그림을 그려보는 빅 픽처가 필요하다.  내가 볼 땐 사람을 A, B, C와 S로 나누지만 큰 그림에서 본다면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은 모두가 S일 뿐이다.   알고 있는가. 내가 S급으로 여기는 그들은 나를 처음모습처럼 둥근 영혼을 갖게 하려고 하늘에서 보낸 특별대변인(Special-Spokesperson)이라는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  이제부터는 신이 보낸 특별한 SS를 만날 때마다 벗어날 생각보다는  그를 통한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인지해야 편하게 살 수 있다.     

‘모난 사람이 모난 사람을 만난다.’는 격언처럼 자신과 비스무리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이다.  허준은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의 모양이요 발이 모난 것은 땅을 형상화한 것이라 말했듯이, 모난 것은 악이 아닌 다만 자연의 일반적 모습일 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모난 것이 곧 내 자신임을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이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각이 진 사람들로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자신을 돌아보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공장에서 물건 찍듯 만들지 않으셨다. 각자의 캐릭터와 매력이 있음에도 우리는 모나 나게 볼 뿐이다.  어쩜 모가 나는 그런 부분들이 상대방의 천연적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더불어 그것은 참된 자아임을 알아야만 인생이 평안해진다.  나와 다른 관점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세상을 너그럽게 수용할 때 진정한 인생개혁은 이루어져가며 삶의 성숙이 가능해 진다.     

내가 소화만 시킬 수 있다면 모난 사람들은 내게 축복의 기회가 됨에도 단지 그들을 S로만 여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사귄다면 내 모난 성격들은 무엇으로 둥글어 질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분야든지 정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말이 적고 실수가 적고 모가 난 사람이 없다.  그들이라고 처음부터 그리했겠는가.  아니다. 살면서 수많은 S들에게 시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모난 부분들이 둥글게 되었고 또 세상일에 대해 분별력이 생기면서 타인에 배려심이 깊어졌기에 오늘의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누구나 모난 것은 부담스럽지만 그들이야말로 나의 부족을 채워 줄 진정한 동역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벅차다.  그래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감당할 용기와 함께 동역할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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