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가치다
결핍이 가치다
  • 한억만(피러한) 목사
  • 승인 2020.10.31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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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은퇴 몇 년을 앞두고 갑자기 사표를 냈다.  나는 너무 놀라 이유를 물어보니 오래 전부터 공동체에 관심이 많았는데,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동안 꿈 꾸어오던 그 일을 하고 싶어 조기퇴직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나는 ‘아니, 그 일이 직장을 관 둘 정도로 가치가 있단 말인가?’ 라는 의아심이 생겼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은퇴 후 세계 곳곳의 공동체를 탐방하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가 왜 그토록 공동체에 마음을 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가 올린 ‘결핍이 곧 가치다’글 중에서, ‘내 삶의 자리가 공동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나는 새삼스럽게 ‘결핍이 가치다.’라는 말이 마음에 조용한 파장을 일으켰다.  매슬러는 인간행동을 결핍과 성장이라는 자리에서 심리학적으로 쉽게 풀이했다.  결핍가치는 욕구충족을 위한 영역이라면 성장가치는 태어날 때부터 소유한 긍정적 가치라 할 수 있다.   결핍인지는 좋게 말해서 목표를 지향하지만, 대신 욕구가 강할수록 부족한 것을 충족하기 위해 외부환경을 바꾸려는 특성이 있다.  아울러 더 판단하고 더 평가하며 외부 자체의 가치를 거부하려는 부정적 영향도 있다.  하지만 결핍가치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만큼 새로운 기회를 생산시켜주는 장점이 있다.     

어느 날, 오나미 개그우먼이 ‘상처 받지 않는 이유’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직접 보면 ‘오나미 닮았는데 훨씬 예쁘다!’라는 식으로 본인 앞에서 자신의 외모를 수준 이하로 평가한다.  처음엔 많은 상처를 받았지만 어느 책을 본 후론 무슨 말을 들어도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비결은 단순했다. 상처는 ‘자신만 받고 있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처럼 대부분 나름대로 결핍된 부분들이 있기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이후부터 그녀는 상처를 극복할 수 있었다.   더욱이 각자의 취향을 존중한다면 상처는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서로 간에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취향이 다르기에 설령 누가 자신을 싫어해도 상처 되는 일이 아니었다. 오나미는 현대사회 ‘미’의 관점에선 미인은 아니지만 그런 ‘미’의 결핍이 오히려 그녀에겐 가치가 되었다.  덕분에 못난이 역할이나 센 캐릭터는 전부 오나미 몫이 되 버렸다.  아울러 수많은 분장을 통해 또 다른 재미가 창조되면서 인기는 하늘을 치 솟았다.  일반적으로 언어유희, 반전, 반복을 개그 3대 요소라고 하는데, 지금은 김, 콧물에 이어 오나미가 들어가야 3대 요소로 여길 정도로 그녀는 어느 덧 많은 이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 버렸다.   어느 날부터 그런 생각으로 상처를 안 받으니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면서 더 성숙한 연기는 덤이 되었다.  자신은 부족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이제 보니 그녀의 1등 자산이었다.  만약 상처받지 않았다면 아니 결핍이 없었다면 지금의 오나미는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과학의 역사에서 1666년과 1905년은 ‘기적의 해’라고 말한다. 그만큼 두 해는 과학사에서 혁명적 성과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먼저 1666년에 뉴턴은 24살 나이로 만유인력을 정립했고, 1905년은 아인슈타인이 26살에 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기적의 해 1년 전 1665년 여름에 페스트 대유행으로 런던 시민 7만 명이 죽어갈 때, 휴교령이 내려지자 뉴턴은 고향으로 돌아가 연구를 거듭하여 미적분을 완성했고,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면서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했다.   이러한 그의 과학업적은 100년 후 산업혁명을 가능케 했다.  이전에 도구란 창과 칼 정도밖에 없었는데,  만유인력 바탕으로 운동량을 계산하여 기계를 만들면서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뉴턴의 한계적 결핍시기가 있었기에 과학은 인류에게 생각지 못한 엄청난 선물을 줄 수 있었다.      올핸 왜 이렇게나 태풍이 잦을까.  그 원인으로 기상이변을 가장 먼저 꼽는다. 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지구 자정능력을 잃으며 생태계 파괴로 온갖 문제들이 수면에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모든 영역에서 결핍으로 인한 불만이 쌓여 갈 때,  누구는 가상의 적을 생성하면서 증오심을 부추긴다.  고달픈 현실 속에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유들을 만들고 있는 세속적인 OO주의에 빠질까봐 두려울 뿐이다.  오히려 코로나로 인한 이런 환경적 결핍 정도를 넘어,  어찌 보면 진정한 21C는 지금 시작한다는 문명사적 대전환점이라는 시각 속에서 해석하자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사태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코로나로 인해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물론 경제적 문제다.  누가 이런 폭풍을 피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수많은 결핍 속에서 평소 소중한 가치를 잊고 살아가던 우리에게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아 가고 있다.   코로나 이후 대면 접촉을 자제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비로써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 일이 꼬이면 상대만 탓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면서,  밖으로만 향했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가정을 향하게 되었다.  되도록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는 동안 나와 함께 하는 가족들이 왜 소중한 존재인지를 새삼스럽게 알아가며 가정의 의미가 새로워지고 있다.     

코로나는 지구촌 전체 문을 닫게 했으니 핵폭탄보다 무섭다.  하지만 아무리 영역별 제한을 계속한다 해도 가정만은 문을 닫게 할 수 없다.   가정은 유일하게 힘들고 위험할 때 돌아갈 보류다.  가정은 재난과 사회적 풍랑으로  낙심이 될 때 다시 힘을 얻어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를 주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가정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병행되면서 가정은 노동의 현장이요 작은 학교, 작은 교회까지 되고 있다.  가정은 이제 먹고 자는 공간보다는 가족 모두가 일상을 나누어야 하는 세상과 이어주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겠는가. 신을 믿는 안 믿든 이정도 재앙이라면 각자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삶의 근본적 목적을 외면한 채 살아왔는데,  코로나는 혹독한 조교가 되어 우리에게 하나하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만들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코로나는 지금까지 엄청난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주었지만,  가족이 하나 되고 이웃의 의미를 더 깊이 알아가고 비대면의 일상 속에서도 이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절대자와 더 깊은 대면이 있을 수 있다면,  코로나 정국 속의 각양 결핍들은 엄청난 축복으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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