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회초리
어머니의 회초리
  • cwmonitor
  • 승인 2004.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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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관 부장


어린아이시절 내 별명은 울보였다. 또래 중 유독 체구가 작은 개구쟁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짓궂게 놀다가 괜한 싸움질을 일삼았던 그 시절, 내 싸움실력은 형편없었다. 갖은 힘을 다하여 호기를 부려보지만, 매번 또래의 힘에 밀려 얻어터지거나 나가동그라지기가 일쑤였다. 울먹거리며 집에 돌아오면 “사내 녀석이 쯧쯧, 어디에다 쓸꼬” 부모님의 이런 꾸지람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싫었다. 한번은 단단히 맘을 먹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쓰러뜨리자. 마침 친구 간에 눈을 부릅뜰 일이 생겼다. 순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냅다 상대방 입술에 내 이마부터 들이박고 보았다.

어느새 그 친구의 입술에서는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통쾌한 승리였다. 의기 당당한 모습으로 집을 향했다. 나도 사내대장부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모습을 한참 지켜보신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잠시 뒤 담 밖에서는 ‘○○이 엄마’하고 누군가 불렀다. 입술에 피가 터진 친구의 어머니였다.

그때 어머니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시면서 못난 자식을 둔 어미를 용서하시라고 빌고 있었다. 되레 매를 들고 나를 나무라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를 가르치신 모양이다. 후에 알았지만, 내가 울고 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나를 때리고 밀어 내친 친구의 부모들을 일일이 찾아가 용서를 받아오시면서 전후 사정에 개의치 않고 내 자식부터 나무라는 그 부모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 하신다.

성인이 된 후, 각박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절대 약점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약점이 노출되면 상대방은 그 약점으로 당신을 넘어뜨리는 무기가 될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감춰라. 매사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번 옳은 일이라면 설령 틀렸다 하더라도, 절대 굽히지 말라. 혹 법정해결이라면 판결 날 때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 사회생활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처세술은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해야 한다. 육신의 힘이 아니라 머리로 쓸 일들이다.

어른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일뿐이다. 각박한 세상,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가 없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 상생은 구호에 불과한 말이다.
이런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고민이 많다. 특히나 크리스챤으로서, 신앙인으로서 또한 갈등이 많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하고, 오리를 가자는 친구에게 십리를 같이 가줘야 하고, 타인에 대해 함부로 심판이나 비판해서도 안 되고, 나아가 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하니… 결론적으로 나는 자격 미달된 크리스챤인 것 같다.

요즘 교계는 ‘정통과 이단’이라는 책자에 대해 말이 많다. 책표지를 칼로 난도질하며 신빙성이 결여되고 논할 가치가 없는 책자라는 등, 이미 몇 차례의 공방전이 오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알맹이를 싼 껍질에 색깔을 입히면서도 알맹이에 대한 성분분석은 없었다.

또다시 얼마 전 책을 펴낸 예수교장로회연합회는 방어전 태세에서 공격전으로 돌변, 싸움의 포문을 열었다. 한기총의 조직표에서 신학적인 문제가 많은 인사가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3명의 목회자 중 한 명은 이단성 발언으로 문제가 있고, 또 한 명은 이미 이단으로 판명됐는데도 이단연구가로 활동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건축과 관련, 이단교단과의 법정싸움에서 망신을 당했다는 내용 등이다. 확인 절차를 통해 명확히 가려할 사항이지만,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남의 잘못된 점을 따지기 전, 내 가족의 잘못됨을 먼저 밝히는 게 순서가 아닐까. 어떤 답변의 카드를 제시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잘 잘못을 덮어둔 비판이나 비방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이미 설득력을 잃은 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꼭 “뭣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요즘 교계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내 자식부터 호되게 매질했던 그 옛날 어머니의 회초리가 그리워진다.

jjk6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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