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서 공간으로(17)
시간에서 공간으로(17)
  • 한숭홍 (장신대 명예교수/ 시인)
  • 승인 2022.08.27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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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여름의 열기 속으로
진주에서 광주-목포로 가는 지도
진주에서 광주-목포로 가는 지도

8월 17일 화, 맑음/ 진주-하동-곡성-광주-목포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는 광주행 버스를 타려고 아침밥도 거른 채 여관을 나와 곧바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해무가 걷혀가며 어슴푸레하던 하늘엔 이울어진 달과 별 하나가 빛을 잃고 하얗게 걸려있고, 시간이 흐르매 따라 동녘 하늘은 붉게 물들며 밝아오기 시작한다.
  차가 남강 다리를 건너갈 때 좌우로 펼쳐지는 진주를 다시 보니 역사의 도시 진주가 너무 아름답다. 아침 빛을 받은 촉석루가 정답게 보이고 서장대며 곳곳의 여러 다락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기와만이라도 보이니 더욱 정이 새롭다.

   차는 곳곳에 들리고는 두 시간 정도 달려 하동에서 잠깐 쉬고, 이곳부터 68km 떨어져 있는 곡성까지 섬진강을 좌편으로 끼고 가다 우편으로 바꿔가며 북서쪽으로 올라간다. 강폭이 점점 넓어진다. 강 양옆으로는 평야며 야산이, 절벽과 하얀 모래밭이 넓게 펼쳐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물도 맑고 푸르러 신비경을 이룬다.
  광주에 오후 1시 30분에 닿으니 1시 5분에 목포로 출발하는 직행 버스는 이미 떠나버려 4시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목포로 가는 급행 버스에 몸을 싣고 2시간 30분을 달려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 시가에 들어서니 첫눈에 이곳의 명산 유달산이 눈에 잡힌다. 기이한 암석으로 봉을 이루고 있는 명산, 노을의 붉은 빛을 받은 이 아름다움에 눈이 부신다.

8월 17일 여행기(1-3쪽)
8월 17일 여행기(1-3쪽)

  ‘9인승 합승 택시’로 차를 바꿔 타고 부둣가로 달려갔는데 제주행 가야호는 이미 6시에 출발하여 하는 수 없이 목포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부둣가 근처에 있는 숙소를 찾으니 골목골목에 홍등의 불빛이 흘러나오고, 짙게 화장한 20대의 젊은 색시들이 허벅지며 앞가슴을 거의 노출하거나 투명한 옷으로 가린 채 줄지어 앉아 있었다. 이런 게 항도의 문화인가라는 생각이 얼핏 스쳐 간다.
  선창 골목은 술집이 메우고 있었다. 밤이 되니 여기저기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원근에 정박해 있는 배에선 불빛이 반짝인다. 어둠 속 검은 바다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무리, 그리고 해풍에 묻혀 오는 습한 바다 내음 등등. 이런 게 부둣가의 독특한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어렵사리 여관을 찾아내어 여장을 풀었는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지친 몸에 피로감이 밀려든다. 자리에 엎드려 일기를 쓰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한참 자다 밖이 시끄러워 깨어나니 술꾼들과 색시들의 고성방가가 밤의 적막을 깨뜨리며 이어진다. 멀리에서는 아녀자들이 싸우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온다. 불을 끄고 누워버렸다. (1965.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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