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의 여성들과 함께 살아가기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과 함께 살아가기
  • 한승진 목사(황등중 교목)
  • 승인 2022.10.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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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진 목사.
한승진 목사.

한 직장에서 20여년을 재직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슬기로운 직장생활의 지혜랄까, 재미를 느낄 만도 한데 그렇지 못하다. 20여년을 해온 직장생활인데도 뭘 어찌해야 잘하는 건지 모르겠다. 직장생활이 힘든 건 봉급의 많고 적음, 진급기회의 상실, 업무의 과중함도 크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게 인간관계이다. 인간관계는 답이 없다. 요즘 말로 노답(No答)이다. 뭘 어찌해야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특히 요즘 느끼는 것은 젊은 세대 여성들과의 관계이다. 직장에서 남성들만 있거나 여성들만 있으면 같은 성별이라 이해도 빠르고 의사소통도 수월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좋든 싫든 남과 여, 여와 남은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함께함으로 유익이 있고, 다름으로 다양성이 가능하니 좋다. 그러나 다름이 좀 버거울 때가 있다. 이것이 최근 내가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다. 젊은 세대 여성들에 대해서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여자들과 편안하게 어울리지 못한다. 초등학교 때는 남녀합반으로 여자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엔 남자만 다니는 학교를 다니다보니 여자들과 만나는 게 어색해졌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남자들과만 어울리다보니 그게 편했다. 남자끼리는 못할 말이 없었다. 스스럼없이 몸을 부대끼면서 놀았고 샤워도 같이 하고 목욕도 했다. 이러누 저런 고민도 나누면서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지금도 남자들끼리 어울림이 편한데 반해 여자들과 어울림은 어색하고 낯설고 불편하다.   
  
그런데 교회에 가면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워낙 여자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보니 교회에 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는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교회에서 만나는 여자 친구들은 편했다. 성별이 다르고 학교가 다르지만 같은 신앙 안에서 함께 하는 즐거움이 좋았다. 교회에서는 매년 가을 즈음 시와 음악이 곁들인 문예의 밤 행사를 했다. 이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홍보하고 진행하면서 우리는 남자와 여자라는 다름이 불편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다름이 느껴지지 않는 그냥 친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교회는 건전한 이성교제의 장(場)이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연애하다가 가정을 이룬 친구와 선후배도 많다. 나 또한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아내를 만났다.  
  
며칠 전 일이 있어 교무실에 가니 젊은 여자 선생님들로 가득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이 긴장하면서 살며시 문을 닫고 나오려고 했다. 그 때 내 나이 또래인 여자 교무실무사님이 말했다. “들어오시려는 거 아니었어요. 들어오세요.” 이 말에 뭐라고 궁색하게 말을 한 건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뭐라고 둘러내곤 그 자리를 빠져나온 것 같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니고 여자 선생님들이 나를 잡아먹을 것도 아닌데 도망치듯 나오고 말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나마 다행인 건 오래 봐온 사이이거나 내 나이 때 정도 되는 이들을 대하기는 수월하다. 그것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스스럼없이 대해주기 때문이다. 여자들을 대하기가 불편하고 어색한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이들은 나이도 있고 해서 그런지 여유가 있어서 좋다. 배울 것도 많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도 좋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불편한 것은 모든 여자들이 아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당연시하던 시기에 성장기를 보내서 그런지 여자들을 대함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같은 신앙 안에서 함께하던 교회 친구들과 내 나이 또래나 그 이상의 여자들은 대하기가 편하다. 그런데 나와 세대가 다른 이른바 젊은 여성들을 대하기는 많이 불편하고 조금은 힘들다. 이들을 가리켜 MZ세대라고도 한다. 가뜩이나 여자를 대함이 불편하고 어색한 터에 세대가 다르고 생각과 느낌과 가치관 등이 다르다보니 많이 불편하다. 괜히 꼰대 소릴 듣는 건 아닌가 싶고, 구닥다리 늙은이로 치부되나 싶기도 하고, 구태의연한 구세대로 여겨지나 싶기도 하다. 나는 이들에게 선배라고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직장생활에 대해 조언을 하지도 않는다. 내가 뭐라고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을 보면 내 나이 또래 남자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임을 느낀다. 

우리 세대 남자들은 직장을 우선시하고 상급자를 존중하고 선배를 예우하고 동료 간의 협력을 중시하는 집단지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들은 아니다. 물론 이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들은 분명 나와는 다른 가치관을 지녔다. 직장 이전에 개인의 행복추구가 중요하고, 근무시간보다 퇴근이후 자신의 삶이 중요하다. 또한 여럿이 함께함 보단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중요하다. 집에 꿀단지를 몰래 숨겨두고 온 것인지 칼퇴근이 좌우명인 듯하다. 이들은 근무시간 이외에 연락하는 것을 싫어한다. 근무시간에만, 공적인 업무로만 소통하는 걸 바라는 것 같다. 인간관계를 공식적인 관계망으로만 설정하려 한다. 이들에게 직장은 그저 계약으로만 이루어진 곳으로 계약이 종료되면 사람관계도 끝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이들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관계를 맺는 것 같다. 즉 가능한대로 가까이하지 말고 가능한대로 멀리도 말자는 것이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왔는데 이들은 사람관계에서도 적정선의 거리두기를 한다. 
  
나와 같은 세대가 지나치게 직장 우선이다 보니 가정과 개인이 소홀한 건 사실이다. 또한 지나치게 상명하복(上命下服)의 군대문화나 권위적인 문화도 바람직한 건 아니다. 소통과 공유를 위해서는 계급장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내가 지닌 구시대의 가치관과 의식을 돌이켜보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나 자신이 바뀌어야한다. 나는 이들에 비해 참신함도 떨어지고 정보습득이나 활용능력도 떨어진다. 이는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이들에게 무시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옳고, 이들이 그르다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이들이 옳은 지도 모르다. 그래도 나이든 세대에게도 조금은 배울 것도 있을 수 있으니 참고로 들어주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마음속에 담아둔 서툰 생각을 펼쳐본다. 젊은 여성들이여! 각자도생도 좋지만 더불어 함께 사는 즐거움과 집단지성의 향연(饗宴)도 즐거운 것임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공적인 자리이고 조직사회이니 적정선의 거리와 예의를 지키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좀 지나쳐서 인간관계맺음이 너무도 견고한 성처럼 경직되어 있다면 이는 좀 문제인 것 같다. 조금은 마음으로 만나고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귐으로 서로 아픔도 나누고 정도 나누는 선후배요, 동지이면 좋겠다.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마음을 공유하는 작업 그리고 직장이 가족과 같은 다정다감한 분위기로 함께한다면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으랴. 직장은 생계유지를 위한 터전임과 동시에 자아실현과 사회봉사를 위한 소중한 터전이다. 직장을 소중히 여기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하는 일에 마음을 담아보면 어떨까 싶다. 만일에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떠나더라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사람들이 있고 서로 안부를 묻고 함께할 사귐이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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