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년은 더 살수가 있습니까?”
“앞으로 1년은 더 살수가 있습니까?”
  • 전태규 목사 (감리교 31대부흥단장, 서광교회)
  • 승인 2022.10.1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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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규 목사.
전태규 목사.

조금 더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은 만남에서 운명이 결정되는데 내가 처음 이의영 목사를 만난 것은 1976년 양구 21사 63년대 2대대 7중대 군종 병으로 일하면서다, 당시 대대 급에는 군목이 없어 가까운 고 방산에 위치한 포대교회로 주일예배를 드리러 다녔다. 그때 이 목사는 포대교회 군종 병으로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 목사가 성결대학을 다닌 줄 알았으면 그때 이야기 나누었을 걸   나중에 알았을 때는 이미 전역하고 난 뒤였다. 그 후 1978년 9월 당시 감리교 서울 신학교에 편입 식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때 중앙연회 감독을 지낸 정승희 목사도 함께 편입하였다. 벌써 40년 가까이 지난 세월이다.

우리 편입생들은 서러움을 잊기 위해 더욱 가깝게 지냈다. 그 시절은 비교적 나이가 많아 우리 과에만 40대 신학생이 20명이 넘었고 그들끼리의 모임도 있었다. 개학식 때 장학생 이름을 부르는데 송청강 목사를 불렀다. 무슨 장학금인가 하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자녀 많은 장학금’이었다. 우리는 신학생 신분으로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였다. 군 입대 동기들이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각각 자대로 배치되어 생활하다가 전역하는 자리에서 또 다시 만난다. 목회도 신학교 졸업 후에 각 연회, 지방으로 흩어져 목회하는데 감리교단은 서리 전도사부터 출발한다. 그 서리가 왠지 당사자에겐 서럽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교단 법을 무시하고 그를 위로해 주려고 서리 때부터 서리감리사라는 호칭을 불러주었다. 이 목사는 아니면 아니라는 표시를 해야 할 텐데 전혀 싫은 표정 없이 그대로 받아넘겼다. 부르다 안 부를 수 없어 부르게 된 것이 어언 30년 넘게 불렀다. 그러나 진짜 감리사는 몇 년 전에 마쳤다. 

목회 초기에 우리는 기도원에 종종 다녔다. 언젠가 강남의 청계산 기도원을 찾았다. 등록처 에 접수 보는 키가 작은 여자 분이 “교육전도사 입니까. 담임전도사입니까?”라고 꼼꼼하게 묻는다. 우리는 목회를 하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었지만 훗날 그때를 회상하며 서로 웃었다. 개척하는 과정도 눈물 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니 알아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후임자들이 알아주면 좋은 마음일 것이다.

세월이 지나 동작지방 철야기도를 마친 후 고인 되신 이민구 목사께서 부채를 갚기 위해 교회를 팔았다며 새 건물을 찾는 중이라 하여 이 목사를 연결해 준 것이 잠시 동작지방에서 목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동작지방은 감리사 내분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목사는 모든 사람에게 대하는 처세술이 뛰어났다. 동기인 나도 속을 잘 모를 정도니 말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부채로 피신 나왔지만 얼마 지난 뒤 이민구 목사가 강화중앙교회로 부임하게 되어 부채를 다 갚아준 상태에서 다시 본교회로 들어갔으니 나는 그 사실만 봐도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심을 확실히 깨달았다.

평생을 고생만한 이 목사에게 어느 날 질병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과거 광림교회서 연회가 열렸는데 그는 내게 자신의 병명과 상태를 상세히 이야기해주었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을 소유하였지만 그런 말을 하기는 남들이 이해 할 수 없는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를 들던 나는 연회석상에서 마이크 들고 이 목사가 이런 병이 들었다는 광고를 하겠다니 그는 내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무슨 용기로 앞에 나가 그런 말을 하겠는가. 이 목사는 투병하는 동안 병과 친구 되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나는 찾아가는 것이 어려워 문자를 보내면 기운이 날 때는 내게 전화를 주었다. 자신의 현재 투병상황을 상세히 이야기 하면서 요즘은 문자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한번은 담당 의사에게 “앞으로 1년은 더 살수가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의사는 의아하다는 듯이 “그렇게 못 살아요”, 라고 대답하더란다. 의사가 이 말을 할 때 이 목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1년쯤 투병하다가 그는 결국 하나님 곁으로 갔다. 지금도 카톡에 있는 그의 해맑은 사진을 보면 살아있는 것만 같다. 그가 세상을 떠 난 후 그와 한 지방에서 목회 한 문충웅 목사 문병을 갔다. 투병 중에 있는 분 앞에 친구의 죽음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 목사는 이 목사의 소식을 알고 계셨다. 어떻게 아셨냐고 하니 카톡이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목사 안됐어!” 라고 하였다. 자신도 곧 떠날 처지임에도 남을 걱정하며 아쉬워하였다. 아마도 지금 천국에서 이 세상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낼 것으로 믿는다.

생사는 내 마음대로 못한다. 하나님이 보내셨고 하나님이 불러가셨다. 이제 남겨둔 사모와 두 딸을 하나님이 맡아주시고 남긴 목회 사역을 사위목사가 계속 계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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