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며
자위하는 친구들
하지만 저들의 속마음엔 머잖아
낙엽이 흩날리는 오솔길
어둠 속을 홀로 걸어가야 하는
초조함과 두려움이 흐르고 있다
나는 가을의 낙엽길 걸음마다
처연히 스며드는 흐느낌에
마음을 섞으며
내게 남아있는 걸 하나씩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길을 떠나려 생각하고 있다
내겐 이 길이 축복의 길이기를…
꽃 정원 너른 마당에서
햇빛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시를 음송하고
자연에 안겨 풍류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꽃들은 이미 이울어졌고
반세기 넘도록 함께 호흡했던 장서마저
도서관에 기증하고 나니 깃털스럽다
낙조에 드리워져 가는 가을빛은
공간을 채워가고 있는 공허함일 뿐
가슴에 담겨있는 것만
나와 함께 어둠에 잠겨간다
뜨내기로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비어가는 가슴에 해달별을 채운다
가슴에 담겨있던 것까지도 내려놓으며
비워져 가고 있는 나, 나 자신
하지만 한 가지만은 영혼에 숨겨가리라
지금까지 나를 빚어왔던
고락苦樂 간의 내 시간과 공간의 세월
이것만이 나이고 나 자신이기에
저작권자 © 크리스챤월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