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에게 오신 예수
요한에게 오신 예수
  • 전중식 목사(전주 산돌교회 원로)
  • 승인 2024.02.28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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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식 목사.
전중식 목사.

선구자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오죽하면 수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까지 몰려왔으랴. 그런데 바로 그 세례를 베푸는 현장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마 3:13-15)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오신 것은, 죄가 있어서 나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지위가 낮아서 나아오신 것도 아닙니다. 선구자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신 것은 "모든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의.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질서와 섭리.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 바로 그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나아오신 것입니다.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기꺼이 나아오십니다. 죄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나아오십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본질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본질을 이루는 것이 내 생각과 일치하면 감사하며 감당할 것이요. 

내 생각이 본질에서 벗어나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회개요 생명이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는 은혜의 지름길입니다. 

내 생각을 고집하면? 가끔 자기 생각과 신앙을 혼동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자기 생각에 몰입하여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덕을 세우지 못해 비판이나 비난을 당하면, 그것을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명심합시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바꿔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의가 이루어지도록, 내 생각과 판단과 결정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오셨을 때, 메시야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임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관과 판단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 요한의 생각은, 비록 자기가 선구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지만은 메시야가 오시면 자기 자신부터 그분에게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안이 열린 세례 요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세례 요한. 자기 역할에 충실한 세례 요한이, 바로 지금 주님 앞에 서는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잠 22:29)

세례 요한은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내가 메시야로 오신 주님께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지, 어찌 감히 내가 메시야이신 주님께 물로 세례를 베풀 수가 있겠습니까?"

이때 주님께서 확실하게 대못을 박아주십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성지순례 중에 예수님의 세례 터로 추정되는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1967년 중동 전쟁 이후, 지뢰와 부비트랩이 매설되고 철조망으로 둘러싸여서, 민간인 자원단체의 후원으로, 복원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만을 들으며, 발걸음을 돌렸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겠다며, 줄서서 대기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집례자와 수세자가 세례복을 입고, 요단강을 드나들며 세례를 베풀고 세례를 받으며, 감격하는 모습을 멀리서마나 지켜 보았습니다. 물론 감격스럽겠지요. 주님께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시간과 경비를 들여 사모하며 찾아와서 소원을 성취하는 중이거늘 어찌 감동과 여운이 보통이겠습니까. 저도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 되리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본질은 요단강이든지, 유대 광야 계곡이나 연못이든지, 사람들이 임의로 교회당에 만든 침례탕(?)이든지, 혹은 세례기 안에 담긴 물을 뿌리거나 붓는 세례든지, 회개하고 돌이켜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벧전 3:21) 그리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세례의 본질입니다. 즉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례 요한처럼 자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신념이든 확신이든 편견이든 선입관이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진리의 성령께서 감동하시거든, 세례 요한처럼 겸손하게 자기의 생각과 결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모든 의가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길에 믿음과 순종으로 전진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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