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 후에 시험이라
금식 후에 시험이라
  • 전중식 목사(전주 산돌교회 원로)
  • 승인 2024.03.0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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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식 목사.
전중식 목사.

내가 나누는 묵상을 읽어보면 2분에서 3분 걸립니다. 그러면 묵상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날짜마다 시간차가 있지만은 대략 2 시간에서 세 시간 쯤 걸립니다.

지성과 영성 그리고 경험을 녹여낸 묵상을 카톡을 주고받는 지인들과 나눕니다. 단톡방에 올리는 것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개인들과 나눕니다. 압축 기도와 함께 축복하며 보냅니다. 이 묵상을 읽는 사람의 영혼이 평안하고, 범사도 잘되며 강건하며, 믿음이 진보하고 성숙하여 은혜와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하면서.

물론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는 분들은 따로 그 기도를 잠시 드리지요. 카톡에 이름이 있어야 그나마 이름을 보고 잠시나마 기도할 수 있으닌깐요.

묵상을 보내면서 카톡을 살펴보면은 일주일이 넘도록 읽지 않은 흔적들이 보입니다. “바쁘게 사시는구나”, “묵상 나눔에 관심이 없으시구나”, “내가 기도하고 축복하며 보내는 묵상을 귀찮게 여길 수도 있겠구나”

응답은커녕 읽는 것조차 뜸해지면, 카톡 즐겨찾기에서 해제하여 명단을 뒤로 뺍니다. 나도 바쁜 사람(?)이니, 시간을 절약하자는 나름의 계산을 하면서.

내가 아쉬울게 뭐람? 읽기는 읽는 것 같은데 도통 댓글이 없으면? 특별한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넘어가면? 나도 대충관계로(?) 정리하곤 합니다. 물론 잘 읽고 미처 내가 도달하지 못한 것까지 요약하고 정리해서 댓글을 달아주시는 그래서 크고 깊은 깨달음까지 얹어주는 그야말로 금상첨화도 적지 않습니다.

원더풀! 그야말로 윈윈! 격려가 되고, 도전도 되고, 감동도 받으닌깐요. 그래서 내 생각도 영성의 크기와 깊이도 한 뼘 자라고 깊어지닌깐요. 바로 그런 보람과 감동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묵상을 나누지요. 나 역시 진보하고 성숙하며 넉넉해져야 오래 갈 수 있거든요. 물론 나누지 않고서도 나 혼자서라도 하늘나라 가기까지 묵상은 계속할 것입니다.

아무튼 댓글에 인색하거나 무심한 분들에게는 한 주, 혹은 한 달, 때로는 분기 쯤에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표로 전화 대신 묵상을 보냅니다. 그때는 그분이 댓글을 달거나 읽지 않거나 간에 괘념치 않습니다. 매일 기도하며 보내는 관심과 사랑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었으닌까요. 최소한 내가 그분을 잊지 않고, 살면서 가끔 기억하고 기도하며 축복하는 표시이닌깐요.

물론 전혀 카톡을 주고받지 않고서도 반갑게 만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왜 이렇게 묵상에 대한 썰(?)이 장황하냐고요? 정성을 기울인 묵상과 기도와 축복에 전혀 반응이 없거나 무관심하다고 여겨질 때 은근슬쩍 시험이(?) 찾아옵니다.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 4:2-3)

목숨을 건 사십 일 금식과 시험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사십 일 금식에, 웬 시험이냐구요? 그런데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리하셨다면 우리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호사다마! 좋은 일에 늘 마가 낍니다. 금식은 신구약 성경에 뺄 수 없는 경건의 요소입니다. 오늘도 성도들에게 금식은 소중한 경건훈련의 자산입니다. 오죽하면 신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수님께서도 목숨을 걸고 금식하셨겠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금식 후에 그것도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 상태에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나아오다니요.

교회생활 대충하는 사람은 시험들 일도 별로 없습니다. 열심 없이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만 둬도 하나님 나라 건설에 별로 도움이 안되닌까요. 그러니 마귀가 표적 삼을 일도 없게 마련입니다. 다만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하면 주님께서 토하여 내치신다고 말씀합니다.(계 3:15-16)

우리가 나름대로 경건훈련에 매진할 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헌금생활할 때, 교회를 사랑하여 살신성인하듯 힘쓰고 애쓸 때, 시험하는 자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나라로 가실 때까지 시험은 계속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영적인 계기 때마다 시험이 특별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에 주리셨을 때에 시험하는 자가 나아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중대사를 경험할 때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해야 하리라.(마 26:41)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믿음을 굳게하여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야 할 까닭입니다.(벧전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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