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성령
돈과 성령
  • cwmonitor
  • 승인 2004.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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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관 부장

성령은 돈을 지불해야 받을 수 있다(?)
3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옛날이야기다. ‘심령대부흥회!’ 대자보를 붙이고 나면 그때부터 교회는 분주해진다. “놓칠 수 없는 집회, 이번만큼은 꼭 큰 은혜를 받을테다. 앞자리 방석은 내 자리다” 벽보앞을 지나칠 때마다 교인들은 덩달아 들뜬다. ‘천국 잔칫날!’ 일년에 한 번 오는 기회인데, 놓칠 수 없다는 간절함이 꽁꽁 언 겨울밤을 녹인다. 시골교회의 부흥집회는 이렇게 떠들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례행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으니, 마음이야 이미 천국에 가 있지 않았겠는가.

유난히 눈이 많았던 그 시절, 유독 방학 낀 겨울날만 열렸던 부흥집회, 하얀 양복을 단정히 입고 강단에서 진두지휘하는 강사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마이크 타고 전해오는 말씀은 심금을 울리고, 때론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면서 은혜를 체험케 한다. 그 겨울밤은 따뜻했다. 잠드는 시간이 빨랐던 어린시절의 긴 겨울밤, 졸음을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다보면 어느새 어린 마음은 숙연해지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 “아, 이게 은혜 체험인가!”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삼일째 되는 밤집회, 강단에서 쏟아지는 은혜로운 말씀이 갑자기 고함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성령 받으라는 고성이 아니라, 헌금봉투를 보면서 낸 고성이었다. 조는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이걸 헌금이라고 냈느냐. 하나님께 부끄럽지도 않느냐” 봉투를 쥐고 흔들면서 다 일어서라고 명령한다. 나이 지긋하게 드신 장로님, 수줍음이 유난히 많았던 권사님 할 것 없이 어린아이들까지 엉거주춤 이다. 바로 이어 앉으라고 한다. “일어서! 앉아!” 몇번을 반복한다. 예배당의 온기는 온데간데없다. 싸늘한 겨울밤이다. 작은 시골교회의 교인 모두는 한 집 건너 친척형제고, 이웃사촌이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씨족공동체나 다름없다. 어린 눈은 이리저리 살펴보기가 민망했다. 머리를 숙이고 아무 말 할 수 없었던 긴장된 사태는 ‘건축 약정헌금’을 적어내고서야 겨우 수습되었다. 작은 웅성거림만 맴돌고 있을 뿐, 왜 그때 누구하나 나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일을 어머니께 따졌지만, 어머니는 주의종의 말을 거슬러서는 안된다, 되레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질책한다. ‘그런가’ 하면서 그 의문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겨우내 땅속에 묻어 놓은 배추 무우 등을 캐내어 겨울양식용으로 쓰던 시절, 시장 후미진 길목 터에 자리잡고 좌판을 벌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점심을 거르고 주어진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신앙, 나는 훔쳐보았다. 부흥집회가 열리는 주에는 돈 중 가장 깨끗한 돈을 따로 챙기시는 게 꼭 연례행사를 치르는 것 같았으니. “얼마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정성이란다”고 강조하시는 말씀은 과자봉지를 뺏기는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시골버스도 빨리 달리게 하는 마술도 부렸으니, 그 신앙심은 그분 삶의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그 돈, 입김 불어가며 정성껏 모아 논 그 쌈지돈이, 강단에서 수모를 겪었으니 ‘돈과 성령의 함수관계’를 그때 어슴푸레 생각한 기억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수차례를 기다리는데 대뜸 “헌금했느냐”, “아니오”, “안수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 목회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충격으로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뒀다는 교인을 보면서 ‘궁핍한 사람은 성령받을 자격이 없다(?)’, ‘돈을 가져와야 성령님도 따라온다(?)’ 생각해봤다. 물론 그 뜻만 있는 게 아니라고 우겨 보지만 씁쓸한 기분만은 떨칠 수가 없다. 세대가 바뀐 요즈음, 교계는 돈과 관련해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한 지붕 아래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다. 두 세력이 팽팽하게 맞섰다. 윗층 아래층을 공평하게 차지하고서 점령군으로 돌변한다. 내 탓은 전혀 없다. 양보도 없다. 들려오는 소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있을 것이다’는 우격다짐뿐이다.

“강단에서 끌어내려!” 신성한 제단에서 외친 그 고함 한마디는 장악력을 갖는다. 법적조항을 들이 대며 교인들을 설득한다. 사탄의 계략에 속지말자고 재차 강조한다.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진리를 수호하며 교회를 사수하자고 똘똘 뭉친다. 상대편도 똑 같은 명분을 내세워 맞선다. 더 큰 목소리를 낸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인가. 하나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부끄럽다. 어떻게 내 탓, 우리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서 무작정 하나님의 판단만을 기다리는 환상에 젖는지. 또 상식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 사회법정에 맡기는 것일까. 승리하기 위해 철야기도를 갖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헤게모니(주도권)쟁탈전 근저에는 여지없이 돈이 똬리를 틀고 있다. 모른척, 태연한척 하지만 속내는 이미 돈을 움켜쥐고 있다. 돈앞에서 명예는 다음 문제다. 위신은 끼지도 못한다. 돈을 잃으면 명예까지 모두 잃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은 일만 악의 뿌리다’라 했는데 ‘돈과 성령’, ‘돈과 믿음’ 그 관계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가. 물론 이러한 사실은 일부분에 속한 일이라고 치부하기도하지만, 돈이 없으면 신앙심도 바로 설 수 없다는 서글픔이 든다. 몇 년을 연거푸 장로직 피택에서 낙선 됐다는 믿음좋은 한 집사님이 올해도 집사직분에 만족할거고, 만년 집사직에 충실할거라고 얼마전 소식을 전해왔다. 왜냐고 물었더니 “내가 좀 가난하거든” 이렇게 말한다. 전화를 막 끊으려 하는데 “참, 숫자 좀 골라 주실래요?” “…” “로또당첨이 바로 장로피택이 아니겠어요!” 농담섞인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jjk6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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