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친일 행적에 대한 회개가 절실하다
교회의 친일 행적에 대한 회개가 절실하다
  • cwmonitor
  • 승인 2005.04.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광수 목사/한국종교계 사회복지협이회이사/사회복지법인 은행골우리집상임이사

우수경칩이 지나고 청명한식이 코앞인데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매섭다. 요즘 날씨를 보면 꽃 피는 것을 시샘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요즘 일본 시마네현의 독도편입조례가 내재된 반일 감정에 불을 지핀 듯 연일 독도문제로 온 나라가 달아오르자 열기를 식혀주려는 듯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피어야 봄이 오는 것을 느끼지만 사실 우리가 감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봄은 이미 와 있다. 봄은 마른 풀잎 하나 돌멩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것저것 깨끗하고 더럽고를 구분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따지고 차별하는 우리의 모습과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정말 많이 다르다.

또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풀 잎 하나는 풀잎 하나의 시련을, 꽃방울은 꽃방울 하나의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우리도 진정 봄을 맞이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개인은 개인에게 맞는 시련을,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게 합당한 시련을 이겨내야 진정 봄날이 찾아 올 것이다. 죽음의 어둡고 음습한 골짜기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메마른 풀속에 새싹이 움트듯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냥 저절로 사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특히 고난주일을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사실 어떻게 고난주일을 보냈느냐에 따라 부활절의 기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회사를 볼 때 우리 교회가 고난의 깊은 의미를 내재화할 수 있을 때 세상의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어둔 세상을 비추는 빛의 역할을 할 수 있었고 기존체제에 순응하거나 기득권세력이 되었을 때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예수님 역시 ‘wanderas radicalismus’(방랑하는 근본주의자)라고 불릴 정도로 철저하게 기존체제를 부정하셨고 이러한 기존체제에 의해 고난을 당하신 끝에 결국은 기존체제에 승리하셨다.

우리 교회는 일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일제시대부터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존체제에 철저하게 순응하며 교세성장을 위해 달려 왔다. 그 결과 세계적인 교회가 등장하고 한국사회의 중요한 집단으로 등장하였다. 시련을 통하기 보다는 시류에 영합하여 성장해온 측면이 없지 않기에 사회적으로 비판이 뒤따르기도 한다. 하여튼 교회가 성장한 만큼 한국교회의 책임성도 높아졌으나 그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교회의 모습이다.

이웃의 아픔에 대해서는 구제라는 명목으로 눈꼽만치 생색을 내면서 교회 건축에는 열을 올리고, 변화를 거부하는 교회안의 가부장적 질서와 세상에 순응하여 어느새 기득권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세상과 우리를 바꾸시기 위한 예수님의 몸부림은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세상 바뀌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집단이 되어버린 듯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선도하지는 못하면 이미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다.

우리나라가 해방이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어언60년을 맞이하여 정치권에서 일제 과거사를 반성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렇지만 교계에서는 2년 전에 일제하 친일행적에 대해 일부 소장파 목사들이 참회한다고 하였지만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다. 기독교의 친일행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연구도 거의 없는 상황 속에서 교계차원에서의 일제하 신사참배문제나 친일에 대해 회개하는 움직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교회안의 친일행적을 밝히기 위한 노력과 회개를 하지 않는 체,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일회성 화풀이에 불과하다. 우리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객관적 증거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우리가 먼저 올바른 입장에 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신의 과거는 묻어놓고 일본만을 탓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이나 망언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다운 방식, 주님께서 기뻐하는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자는 것이다.

정부의 일제하 과거사 진상규명 보다 더욱 철저한 교회의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해 교단이나 교계연합단체, 학술단체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친일에 대한 회개와 신앙고백이 담긴 교회사를 가져보고 싶은 것이 비단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g8s8@chollian.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