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깨는 제직들
침묵을 깨는 제직들
  • cwmonitor
  • 승인 2005.09.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덕봉 목사/소망전원침례교회

제직은 목회의 협력자이다. 손을 들고 기도하던 모세의 양팔을 아론과 훌이 받치고 있을 때 모세의 피곤한 팔은 내려오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목회야말로 적극적인 기도의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구조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목회의 다양화를 추구하는 현대 목회에 있어서 제직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훌륭한 제직일수록 목회와 관련된 것이라면 목회자의 방침에 따라 먼저 실행하고 나중에 이론적으로 접근한다. 목회마저 제직의 몫인 줄 알고 되느니, 안되느니 하면서 따진다면 목회자와 제직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목회자의 독주를 방관하라는 것은 아니다. 제직들은 새로운 목회 방안을 건의하고 조언하는 협력자로서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제직은 성도들의 모범이 돼야 한다. 목회를 협력하는 사역자로, 영적인 성장과 신뢰받는 생활의 모범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 그 곳에는 평화가 깃들이고 눈에 띄는 교회의 성장이 이뤄질 것이다.

아울러 제직들은 소극적인 자세로 목회를 협력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협력하는 것이 교회와 개인에게 유익을 준다. 가나안 정탐 시에도 10명의 소극적인 정탐꾼은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 준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축복의 대지로 전진해 가야한다는 적극적인 보고를 했다. 결국 소극적인 10지파는 모두 광야에서 죽어갔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목회현장에 소극적인 제직보다 적극적인 제직들이 많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간혹 사사건건 목회를 간섭하며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목회의 방향타가 부러져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목회자와 제직 간에 일어나지 않아야 될 불미스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이제 갓 신앙생활을 시작한 신자에게 신앙의 상처마저 입히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다. 게다가 목회자가 병들어 눕게 되면 목회에의 협력은커녕 수습할 수 없는 문제를 야기 시킬 때도 있다. 진정한 목회 협력이 필요한데 한결 같이 목회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마침내 목회자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어제까지의 좋은 관계는 아무 소용도 없고 남아있는 유가족조차 짐스럽다는 듯이 하루빨리 사택을 비우고 나갈 것을 종용한다. 선교 100년을 훌떡 넘긴 이 시점에서 함께 생각해볼 과제라고 감히 제안해 본다. 우리의 목회 현장에 제직들이 지혜를 모아 그리스도인다운 처분을 내려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앞장서줄 수는 없을까? 목회자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유가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없어야겠기에 노파심경으로 해본 말이다. 병들어 누워있는 목회자를 쳐다보고 있는 사모에겐 제직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가 사랑일 수도 있고 비수일 수도 있다. 눈치 보며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사모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그나마 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는 일어서리라는 실오라기 같은 기대라도 걸고 있을 때는 다행이다. 그러나 숨을 거둔 후엔 한 순간에 기대가 무너지면서 실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만나본 홀사모들이 그 순간의 아쉬움과 설움을 토로하는 것을 많이 봤다. 사택을 비워달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갈 텐데, 다시는 안보겠다는 듯이 박절하게 행동하는 제직들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풀기에는 너무나 단단하게 느껴진다.

이같은 사례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직들의 목회협력이 새삼 아쉽다. 모든 제직들에게 어려움을 당한 목회자의 가정에 대해 큰 사랑을 보여줄 것을 당부한다. 목회자가 없는 사모가 교회생활에서 즐거움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제직들마저 등을 돌린다면 사모의 설자리는 더더구나 막막해진다. 사모도 교회 공동체의 한 구성원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고 목회자를 잃은 사모에게 일반 성도처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살기 위해서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말하고 싶다.
목회자는 귀한 사명자이므로 직업의 귀천을 가려 목회자 가정이기 때문에 귀하게 대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사모도 사명자이기에 남은 생애를 사명자로 일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것이다.
목회의 협력자들은 목회가 결코 부를 축적하는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을 줄로 안다. 그러므로 목회의 주인공이 부르심을 받을 때 사모나 그 자녀들이 겪게 될 고통을 조금이나마 생각하면서 그들을 후원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는 자비의 양선의 열매를 맺으면 좋겠다.

doulos59@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 신관 201-2호
  • 대표전화 : 02-3673-0123
  • 팩스 : 02-3673-01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종권
  • 명칭 : 크리스챤월드리뷰
  • 제호 : 크리스챤월드리뷰
  • 등록번호 : 서울 아 04832
  • 등록일 : 2017-11-11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임종권
  • 편집인 : 임종권
  • 크리스챤월드리뷰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크리스챤월드리뷰.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D소프트